[백두대간을 가다 / 육십령-동엽령 구간] 벅찬 감동이 함께 하는 장쾌한 능선길
[김성률 기자] 새벽 4시, 아직 깜깜한 밤과 같은 이 시각에 등산화에 겨울 등산복을 입고 머리에는 헤드 랜턴을 두른 채 전구불빛에 의지해 거친 산길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한 달에 두 번씩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인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눈빛에서는 가볍게 산행을 나서는 등산객들과는 다른 어떤 힘과 결기가 느껴졌다.

백두대간은 도상거리로 약 680킬로미터에 이르며 이를 성인의 걸음으로 계산하면 약 100만 걸음이 된다고 한다. 백두대간을 계속 걸으면 며칠이나 걸릴까? 산행속도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약49일 정도가 걸린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1년 7월19일 지리산에서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해 꼬박 49일간 걸었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백두대간에 첫 발을 내딛을 때, 나는 답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중산리에서 출발해 하루하루 험준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49일 만에 마침내 마등령에 도착하였을 때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마 그 질문의 답이라는 것은 정치라는 새로운 길이었을 것이다.

백두대간에는 그 어떤 의미와 묘미가 있기에 산꾼들이 그토록 사랑하며 또 열광하는 것일까? 백두대간 한 구간을 함께 하며 가장 평범한 질문의 답을 찾기로 했다.
[백두대간을 가다 / 육십령-동엽령 구간] 벅찬 감동이 함께 하는 장쾌한 능선길
이날 백두대간 종주구간은 백두대간 북진 7구간으로서 육십령에서 장수덕유산으로 불리는 서봉과 남덕유산을 지나 동엽령을 찍고 안성매표소로 하산하는 장장 22.5km, 약 12시간 내외의 산행시간을 필요로 하는 구간이다.

서울시산악연맹 알파산악회(회장 이원영) 백두대간 북진 종주대의 김석해 대장(54)이 선두에 서서 산행이 시작됐다. 순수 아마추어로서 백두대간 종주대를 이끌고 있는 김 대장은 항상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있어 함께 산행하는 이들의 마음을 편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매력있는 남자다. 알파산악회는 매년 한마음자연보호 산행을 통해 환경캠페인을 벌여왔으며 장애우와 함께 하는 ‘어울림 산행’을 계속해오면서 2012년도에는 서울시산악연맹 우수산악회에 선정되기도 했다.

예전에는 산도둑들이 하도 설쳐대서 장정 육십 명은 모여야 넘어갈 수 있다고 하는 육십령(해발 700m)을 출발하여 할미봉(1,026m)을 향해 약 2.3 km를 이동한다. 고도차가 있다 보니 길이 가파른 편이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나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이 나기 시작한다. 벌써 두꺼운 재킷을 벗고 가볍게 산행을 하는 산우들이 여럿 보인다.

산행을 시작한지 약 1시간 여만에 드디어 할미봉에 도착했다. 백두대간길은 자주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른바 '인증샷'을 찍기 바쁘다. 내 나라의 등줄기에 해당하는 대간길, 내 발자국이 남겨진 이 작은 지점에서 자신의 사진을 남기는 것은 대간꾼들의 아주 소박한 욕심이다.
[백두대간을 가다 / 육십령-동엽령 구간] 벅찬 감동이 함께 하는 장쾌한 능선길
할미봉 주변에 위치한 대포바위(일명 남근바위)는 어두운 탓에 구경하지 못하고 서봉(1,510m) 즉 장수덕유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7시가 되자 날이 확연히 밝아 온다. 그리고 나타나기 시작하는 장쾌한 마루금들. 겹겹이 둘러 쌓여 동양화같기도 하고 추상화 같기도 한 마루금들을 바라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있으면 왠지 세상의 일이 모두 작아 보인다. 내가 왜 그렇게 사소한 일에 집착했었는지. 더 큰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지 짧은 회한이 무시로 오고 간다.

할미봉을 지나 남덕유산으로 가는 능선길은 저 멀리까지 바로 눈으로 바라다 보인다. 금방 갈 수 있을것 같지만 여러 시간이 걸려야 비로소 도착할 수 있다. 내가 지나온 길이 빤히 바라다보이고 앞으로 갈 길도 계속 바라다볼 수 있는 육십령-동엽령 구간은 이렇듯 장쾌하고 멋진 능선길이어서 대간꾼이 아닌 일반 등산객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길이다.

남덕유산에서 약 200미터 정도 못 미친 곳에서 바람을 피해 아침식사를 했다. 자리를 펴고 여러 명씩 둘러 앉아 준비해온 식사를 한다. 보온통에 가져온 밥에 떡국국물과 오뎅국물을 얻어 말아먹으니 밥맛이 꿀맛이다. 여기에 복분자술까지 한잔 걸치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지상에 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어디 있으랴. 준비해온 음식을 서로 권하며 나누어 먹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커피까지 한잔씩 나누어 마시고 다시 남덕유산으로 향한다. 사실 남덕유산은 대간구간은 아니지만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꼭 들렀다가 가는 곳이다. 이곳에서 탁 트여진 사방의 전망을 감상하고 다시 삿갓봉으로 발을 옮긴다. 해발 1,418미터인 삿갓봉을 지나면 머지않아 삿갓재대피소에 도착한다.
[백두대간을 가다 / 육십령-동엽령 구간] 벅찬 감동이 함께 하는 장쾌한 능선길
이곳에서 앞서가던 대장을 포함한 선두팀은 34명의 종주대원이 모두 오기를 기다려 백두대간 일곱째 구간 기념촬영을 한다. 가장 먼저 도착해서 맨 후미를 기다리면서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백두대간은 혼자서 완주하기에는 너무 멀고 힘든 길이기 때문에 팀을 이루어서 종주를 하게 되고 종주팀은 한 식구와 같기 때문이어서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삿갓재대피소에서 캔커피를 사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출발이다. 이곳에서는 약 2킬로미터 떨어진 무룡산(1,492m)에 오르는 것이 작은 고비다. 이미 지나온 삿갓봉보다도 높은 봉우리여서 다소 힘이 드는 구간이다. 반면 무룡산만 넘게 되면 동엽령까지는 약간의 오르내리가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내리막길이어서 큰 힘이 들지는 않는다.

경사가 가파른 길에서는 잠시 길에서 벗어나 쉬었다가 초콜릿과 과일을 나누어 먹고 힘을 내서 한발 또 한발 오른다. 사실 산행에서 이 '한 발'은 무척 중요하다. 느리게라도 걸어가는 것과 완전히 서서 쉬는 것과는 결과적으로 큰 차이를 나타낸다. 산행이 끝나고 보면 산행속도가 빠른 사람보다 꾸준히 걷는 사람이 더 빨리 산행을 마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백두대간을 가다 / 육십령-동엽령 구간] 벅찬 감동이 함께 하는 장쾌한 능선길
기온이 올라가고 오르막길이 계속되면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산행중에 땀이 나면 옷을 벗어야 하고 추우면 옷을 입어야 한다. 물론 상식에 속하는 이야기이지만 "산행중에 옷을 입고 벗는 것만 잘해도 산행실력이 중급에 속한다"는 말이 있다.

귀찮다고 해서 땀을 흘리며 계속 산행하게 되면 옷을 적시게 되고 다시 이 상태로 계속 운행을 하게 되면 바람에 노출되면서 저체온증이 오게 된다. 산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이 저체온증이다. 심하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생긴다. 일단 저체온증이 오면 젖은 옷을 모두 벗고 따뜻한 침낭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두꺼운 오리털 파카 등을 입혀주고 체온이 떨어진 몸을 계속 마사지 해주어야 한다.

추위는 의외로 얼굴이나 목, 손과 같이 공기에 노출된 곳에서 더 빨리 느끼기 때문에 살이 드러난 부위를 막아주는 얇은 털모자, 보온장갑, 버프, 얇은 보온용 스카프, 발라클라바 등이 필요하다. 여기에 10시간 가까이 열을 내는 핫팩을 준비하면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걱정 없다. 추위를 더 많이 타는 사람이라면 외부 기온에 영향을 받는 핫팩보다는 손난로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힘들게 무룡산을 오르면 이제 동엽령까지는 불과 4킬로미터가 남았을 뿐이다. 이제 다시 사방으로 탁 트여진 전망이 가슴 속을 시리도록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경치를 구경하며 다소 느릿느릿 걷다보니 여름에는 풍부한 녹음을 그리고 한겨울에는 언제나 푸짐한 적설량을 보여주면서도 지리산 못지않은 넉넉함을 지니고 있는 덕유산의 매력에 다시 한 번 빠지게 된다.
[백두대간을 가다 / 육십령-동엽령 구간] 벅찬 감동이 함께 하는 장쾌한 능선길
산행을 시작한 지 10시간이 더 걸려 드디어 동엽령에 도착했다. 동엽령은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상남도 거창군에 걸쳐있는 곳으로 예전부터 영호남을 잇는 중요한 고개였다. 대간길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계속 직진하면 덕유산의 가장 맏형인 향적봉(1,614m)이 나올 것이고 백련사로 하산하면 유명한 무주구천동을 따라 산행을 마칠 수 있다. 아니라면 인근 설천봉에서 곤돌라를 타고 20여 분만에 가볍게 하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종주대는 동엽령에서 일곱 마디 구간을 마무리하는 안성매표소로 방향을 튼다. 이제 1시간 30분여 하산을 하게 되면 12시간에 가까운 산행으로 지친 백두대간 종주대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와 만나게 될 것이고 맛있는 뒤풀이 시간도 갖게 될 것이다. 다소 길고 힘들었던 대간길을 걸었던 추억을 되새김하면서 정담도 나누게 될 것이다.

오랜만에 12시간에 가까운 장거리 종주에 나서면서 몸은 지쳐가고 발바닥은 아파왔지만 마음 속에는 한 가지 묵직한 것이 들어섰다. 크고 높은 것 만으로만 치자면 어찌 히말라야를 당할 수 있겠느냐마는 바로 내 나라 대한민국의 등줄기인 대간에 내 족적을 남기고 간다는 것, 내 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직접 만나고 겪고 즐기는 동안 이 땅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강해졌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나온 능선길이 아스라하고 저 앞으로도 거침없이 펼쳐져 있는 능선길이 삼삼하다. 아쉬운 마음을 접어두고 동엽령을 떠나 마지막 하산길에 오른다. 이제 독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질 지도 모른다. “그래 백두대간에는 그 어떤 의미와 묘미가 있었느냐?“고. 의미? 묘미? 그런 것은 이미 필요가 없어졌다. ‘백두대간이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에’ 오늘도 산꾼들은 배낭을 꾸려 대간길을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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