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거래가 쉽지 않은 중소기업과 중산층 서민들이 맘 편히 거래할 수 있는 소매 전문 금융그룹이 목표입니다.” 김한 전북은행장(59)은 서민대출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로 틈새시장을 공략, 새로운 은행모델을 선보이겠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카리파마, 일본 스루가 등 선진국엔 소매금융에 특화한 은행이 많지만 한국은 전부 대형 시중은행 모델을 좇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소매전문은행을 실현하기 위해 ‘2층 4인 점포’라는 소형 점포 전략을 실험 중이라고 말했다. 목 좋은 빌딩 1층의 통상적인 은행 점포와 달리 2층에 소규모로 열고, 온라인 마케팅을 강화하는 ‘비대면(非對面)’ 방식인데 효과가 좋다는 설명이다.

취임 3년째인 김 행장은 은행뿐 아니라 증권 보험 컨설팅사 등 금융 전 분야를 섭렵했다. 그는 막힘 없이 전북은행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 전략을 풀어나갔다.

▷최근 자산 규모가 급성장한 점이 돋보인다.

“임기를 시작(2010년 3월)할 때 은행자산이 7조3000억원이었는데, 작년 말 현재 11조5000억원으로 60% 정도 늘었다. 2011년 인수한 JB우리캐피탈 자산을 합치면 13조8000억원이다. 그룹 전체 자산이 3년도 안 돼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너무 빨리 느는 게 걱정스러울 정도로 가파르게 달려왔다.”

▷급성장을 우려하는 시각이 실제로 많다.

“이미 성장률을 낮춰가고 있다. 취임 당시는 자산 규모가 큰 저축은행 정도에 불과해 경제적인 사이즈가 못 됐다. 외부 충격에도 취약했다. 그래서 덩치 키우기에 집중한 측면이 있다. 이제 어느 정도 자산이 쌓여 성장은 더 이상 목표가 아니다. 3년 뒤인 2015년에 은행 15조원, 캐피털 5조원 등 20조원의 자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산을 급히 늘리면 부실도 늘 텐데….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5억원 넘는 대출은 1년에 두 번 이상 심사한다. 그것도 해당 지점과 본사에서 동시에 한다. 지점은 잘못된 여신인 줄 알아도 질질 끌려가는 때가 많다. 본사가 나서면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일시적으로 어려운 기업은 더 과감히 지원해 살리고, 싹수가 노란 기업은 손절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연체율이 1.3~1.4%로 다른 시중은행들보다 낮다. 또 지역이 좁아 고객 집의 숫가락 밥그릇 숫자까지 알 정도다. 부실 관리가 잘되는 이유다.”

▷지난해 웅진그룹에 500억원을 물렸다.

“우리로서는 가장 큰 여신이었다. 뼈아픈 판단 실수였다. 3, 4분기에 240억원의 충당금을 쌓아 관련 부실을 다 털었다. 다행인 건 수익 기반이 탄탄해진 덕분에 올해 수익이 작년보다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또 웅진코웨이가 매각돼 충당금의 상당액은 올해 환입된다. 내부 통제에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변명일 수 있지만 여신의 세 배에 달하는 담보를 잡았는데도 웅진 측이 작정하고 나와 불가피하게 당한 측면도 있다. 웅진 사건 이후 300억원 넘는 여신은 웬만하면 취급하지 않는 방향으로 리스크 관리를 강화했다.”

▷장기적인 성장전략과 모델은 뭔가.

“중소기업과 서민층이 맘 편하게 찾는 소매전문 금융그룹을 지향한다. 시중은행은 큰 기업과 자산가들을 중시한다. 서민들은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을 이용할 때가 많지만, 금리나 서비스에서 불만족스러운 게 사실이다. 우리는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의 중간층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은행의 장점을 살려 주어진 여건에서 가장 싼 대출과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이다. 대우자동차판매가 전신인 JB우리캐피탈을 2011년 인수한 것도 서민 금융그룹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구상의 일환이다. 일본 스루가은행 등 소매금융으로 성공한 모델이 적지 않다. 특히 유럽에선 이탈리아 카리파마처럼 중소서민에 특화한 사례가 많다.”

▷비전을 현실화시킬 방법은 뭔가.

“투자은행(IB)이나 도매업무는 거의 안 한다. 외환에서도 손을 뗐다. 우리가 잘하는 건 소매금융이다. 물론 소매에 치중하면 손실을 입히는 고객이 많아진다. 신용 낮은 고객이 한둘이겠나. 그래도 그 길로 가야 한다. 그게 지역은행의 역할이다. 또 우리는 서민들을 잘 안다. 낙후된 지역 특성상 중소기업과 서민 고객이 많아 오랜 노하우가 쌓였다. 수도권과 전북 고객의 경제 상황이나 생각이 다른 만큼 우리는 별개의 심사모델을 적용한다. 그만큼 심사기법을 향상시켜와 나름의 자신감을 갖고 있다.”

▷서울 등 외지로의 진출이 활발하다.

“지역은행이라는 틀을 벗어나야 한다. 전북 인구가 180만여명인데, 줄고 있다. 반면 외지에 사는 전북 출신이 360만여명이고, 이 중 250만여명이 수도권에 거주한다. 그래서 최근 2년 새 서울에 점포를 8개 내 총 9개로 만들었다. 30% 선인 서울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가져갈 생각이다. 대전에도 5개 점포를 냈다. 이들 신설 점포는 ‘2층에 있는 4인 점포’가 기본 개념이다. 요즘 고객들은 은행을 거의 방문하지 않는데 1층에 크게 낼 이유가 없다. 카페베네처럼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곳에 많이 여는 게 중요하다. 지방은행이 타지로 진출하는 것을 마땅찮게 생각하는 시선도 있던데, 중소기업과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점포인지라 정부의 정책목표와도 부합한다고 본다. 이 같은 ‘비대면’ 점포전략을 포함해 ‘JB뱅크 2.0’이라는 이름의 소매금융전략을 구체화해 내년부터 확대 시행할 생각이다.”

▷캐피털이 의외로 좋은 듯하다.

“내부에서도 놀랄 만큼 급성장 중이다. 인수 당시 0%이던 현대자동차 신차금융 점유율이 8%로 높아졌다. 이익(세전) 규모가 인수 첫해 100억원에 이어 올해 300억원, 내년 600억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목표와 동기를 부여하고 지원한 결과다. 든든한 동생 집이 생긴 느낌이다. 캐피털의 순항이 서민금융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생각이다.”

▷지난해 말 지주회사 전환을 선언했는데.

“여름 정도면 출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자회사를 당장 추가할 계획이 없어 크게 달라질 건 없다. 광주은행을 꼭 인수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규모를 키우는 게 능사가 아니다. 가치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의 이해와 평판이 특히 중요하다. 시너지 효과보다 장기적인 손해가 더 클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