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시마 히로오(水島廣雄) 전 소고그룹 회장은 일본 유통업계의 ‘신화’였다. 그는 1960년대 말부터 20여년간 공격적인 차입경영으로 요코하마의 작은 헌옷 가게를 일본 최대 백화점 그룹으로 키워낸 사람이다. 그의 노하우는 지방자치단체의 재개발 정보 등을 빠르게 알아내 주변 땅을 사들이고 백화점을 짓는 것. 백화점을 지으면 땅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걸 담보로 또 다른 백화점을 냈다. 사이타마현에 30번째 점포 가와구치소고를 지을 때까지 이런 사업 방식을 이어갔다. 그는 ‘소고 연금술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땅값이 떨어지자 그의 차입경영은 위기를 맞았다. 새 백화점의 채산성이 맞지 않았고, 적자가 늘었다. 주식회사 소고 등 소고그룹 계열 22개사는 2000년 당시로선 사상 최대였던 1조8700억엔의 부채를 떠안고 결국 파산했다. 미즈시마 전 회장도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소고백화점은 이후 경영권이 넘어가 주식회사 소고·세이부가 됐다.

박성재 씨(43)는 2001년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시작해 한때 잘나가던 ‘사장님’이었다. 금융위기가 오기 전까지 한 달에 1000만원가량 순이익을 남기며 알토란 같은 사업을 일궜다. 2007년 ‘좋은 투자 기회’라는 친구의 소개로 경기도 용인에 7억원짜리 집을 샀다. 은행에서 3억5000만원을 대출받고 모자라는 돈 5000만원은 저축은행에서 빌렸다. 한데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일이 꼬였다. 집값이 자꾸 떨어졌다. 사업 매출도 종전의 3분의 2 수준으로 급감했다.

용인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려고 했지만 이미 4억원어치 대출을 끼고 있는 데다 집값도 1억5000만원가량 떨어져 추가로 대출할 수 있는 돈은 5000만원에 불과했다. 이율은 연 11%나 됐다. 월 이자가 350만원을 넘어섰다. 사업이 계속 어려워지자 신용카드를 돌려막기 하다가 사채를 쓰기 시작했다. 연 30% 고금리였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매달 내야 하는 이자는 순식간에 1000만원에 육박했다.

박씨는 결국 집을 경매에 넘기고 사업도 접었다. 그는 “사장에서 신용불량자가 되기까지 불과 3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 경제가 불황에 접어드는 과정에서 ‘빚’은 핵심 고리 역할을 했다. 거품이 형성되면서 기업들은 같은 부동산을 갖고도 담보가치 상승으로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었다. 힘들게 영업해 돈을 벌기보다 부동산 투자로 쉽게 돈을 버는 ‘단맛’을 본 일본 기업들은 은행에서 더 많은 돈을 빌렸다. 그러다가 거품이 꺼지자 담보로 맡긴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고, 빚 독촉에 몰렸다.

기업들은 돈만 벌면 빚을 갚아야 했다. 투자는 엄두도 못 냈다. 그 바람에 경기는 더 고꾸라졌다. 이렇게 부채를 줄이다가 초래한 경기악화를 일본에선 ‘대차대조표 불황’이라고 부른다. 지금 한국도 형태는 다르지만 빚더미에 깔려 있긴 마찬가지다.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국내 소비 부진의 큰 원인이기도 하다. 일본이 기업발(發) ‘대차대조표 불황’을 겪었다면, 한국은 가계발 ‘가계부 불황’이 시작될 조짐이다.


◆일본 기업, 빚 갚느라 투자 못해

일본에선 거품기에 은행들끼리 기업에 대한 대출 경쟁이 붙었다. 장기신용은행과 일본산업은행은 소고백화점의 국내외 투자에 누가 더 많은 돈을 빌려주느냐를 놓고 기싸움을 벌였다. 거품이 형성되는 동안엔 괜찮았다. 하지만 거품이 꺼지자 은행들은 기업에 ‘담보가 부족하니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꼭 은행의 요구가 있어서만도 아니었다. 보유 자산의 가격 하락은 기업의 재무제표를 심각하게 악화시켰다. 대차대조표의 대변(자본·부채)과 차변(자산)의 합은 같아야 한다. 자산가치가 줄어들면 자본금을 늘리거나, 부채를 줄여야 한다. 자본금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은 부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기업 투자는 줄고, 부실기업은 늘었다. 고용이 불안해진 개인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소비도 줄였다.

일본 가계도 빚에 찌들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1986년부터 4년간 일본 가계부채는 연평균 12.2%씩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68.9%에서 84.1%까지 높아졌다.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기업과 개인이 모두 ‘축소지향적’ 경제행동에 나서자 1980년대 4% 수준이던 일본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1990년대 2~3%로 떨어졌다. 거품 붕괴 이후 1990년대 실제 성장률은 연평균 1.4%에 그쳤다.

◆한국은 가계빚에 소비 줄여

일본 장기불황의 아킬레스건이 ‘기업 빚’이었다면 한국은 ‘가계 빚’이 문제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금융위기 이후 급증해 작년 2분기(4~6월) 기준 1121조원에 이른다. GDP의 89%나 된다. 거품 붕괴기의 일본보다 높다. 가계의 빚을 갚을 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3일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에 따르면 가계의 신용위험지수는 34로 신용카드 사태가 발생한 2003년 2·3분기(44) 이후 가장 높았다. 2008년 금융위기 때 25에서 9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가계부채는 소비를 옥죄어 경기 악화를 부채질한다. 수입은 늘지 않는데 빚 갚는 데 더 많은 돈을 쓰고 나면 소비할 수 있는 돈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른바 일본형 ‘부채발 소비침체’가 한국에도 눈앞에 닥친 셈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08년 금융위기 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3.8%였지만 민간소비 증가율은 2.2%에 머물렀다”며 “일본의 민간소비 증가율이 1980년대 3.7%에서 1990년대 1.5%, 2000년대 0.9%로 급격히 둔화했던 것을 닮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도쿄=안재석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