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사람 = 허원순 지식사회부장

‘세 개의 빨간 열매’로 불리는 ‘사랑의 열매’는 지난해 7월까지 13년간 국내 유일의 법정 모금기관이었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상징이다. 공동모금회는 연말연시 두 달 동안 펼쳐지는 나눔 캠페인이자 기부금 모금 지표인 ‘사랑의 온도탑’으로도 유명하다.

기부와 나눔의 상징이었던 사랑의 열매는 2010년 가을 큰 상처를 입었다. 직원들의 성금 유용 등 각종 비리가 적발되면서 1998년 설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비리의 열매’라는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 그간 쌓아왔던 신뢰도 한순간에 추락했다. 이 여파로 기부금 모금 지표인 사랑의 온도계도 2010년 94.2도에 머무르면서 설립 이래 처음으로 100도(목표액) 달성에 실패했다.

공동모금회가 존폐 위기까지 몰린 와중에 등장한 구원투수는 이동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74). 그는 비리 여파가 한창이던 2010년 12월 임기 3년의 제7대 회장에 추대됐다. 그는 추락한 모금회의 신뢰를 2년여 만에 회복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는다. 비리 여파와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모금액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오는 15일로 취임 2주년을 맞는 이 회장은 지난 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역시 사랑의 온도 100도를 넘어 또다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올해 모금액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올겨울엔 추위가 빨리 찾아올 것이라는 기상 예보 때문에 연말연시 캠페인을 예년보다 닷새 이른 지난달 26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내년 1월31일까지 67일간 2670억원을 목표로 모금활동을 진행 중이지요. 지난해 모금액(2593억원)보다도 3%를 늘려잡았습니다.”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모금액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캠페인 목표모금액은 2180억원이었는데 19%를 초과 달성한 2593억원이 모금됐습니다. 계속되는 경기불황 속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우리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들이 더욱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공헌활동을 중시하는 기업문화의 확산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봅니다.”

▷국내 대기업들의 기부 현황은 어떻습니까.

“국내 모금액 중 기업 기부금이 70%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개인기부 의존도가 훨씬 더 큰 미국이나 영국 같은 소위 기부 선진국과 대조적입니다. 캠페인 첫날인 지난달 26일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이 200억원, 29일엔 삼성그룹이 모금 사상 최대 기부액인 500억원, 30일에는 LG그룹이 100억원을 전달하면서 순조로운 출발을 했습니다. 대기업들의 이 같은 기부 열기가 우리나라 구석구석 널리 퍼지기를 희망합니다.”

▷최근 들어 변화된 기부 트렌드는 무엇입니까.

“바로 ‘다양성’입니다. 특히 기업 기부가 그렇습니다. 아직까지도 현금기부의 비중이 높기는 하지만 현물기부나 공익연계 마케팅, 특히 기업 특성에 따른 갖가지 맞춤형 사회공헌 등 그 방법과 분야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어요. 대기업들의 이 같은 움직임이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에게까지 서서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나눔문화를 이끄는 데 기업들이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의 면면은 어떻습니까.

“아너소사이어티는 2007년 12월에 설립돼 이달로 정확히 5년이 됐습니다. 회원 수가 매년 크게 늘면서 올해도 83명이 가입해 지난 5일 기준으로 총 185명입니다. 이런 추세로 보면 연말까지 200명 달성을 조심스레 점치고 있습니다. 대부분 이런저런 시련을 겪으며 어렵사리 성공을 이룬 분들입니다. 따라서 어려울 때의 도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지요. 그래서 기부뿐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이는 봉사활동에 땀 흘리는 분들도 많습니다.”

▷2010년에 모금회 비리가 적발되면서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습니다만.

“모금회 비리가 발생한 직후 회장직을 맡으면서 책임감이 참 무거웠습니다. 모금회 비리는 주로 지방 조직에서 일어났죠. 중앙과 지방 조직이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던 게 원인이었습니다. 지방의 경우 중앙 조직이 인사와 예산에 거의 손을 못 댈 정도였으니까요.”

▷모금회 쇄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투명성과 공정성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고 고칠 건 고치고, 새롭게 도입할 것은 도입했습니다. 기부자 본인들이 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부정보확인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다양한 외부인사로 구성된 시민감시위원회를 발족했고, 사이버신문고제도와 내부공익신고제를 도입했습니다. 지난 7월에는 성금이 편중되지 않고 빠르게 지원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 사회통합관리망(행복e음)과 연계시스템도 만들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복지 논쟁이 한창입니다.

“국가에서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것을 해주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국민들에게 모든 걸 다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부자들이 앞장서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게 어려운 국민들을 도와주는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기부야말로 복지입니다. 나눔이 의무를 넘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복투자의 개념이라는 인식 전환이 됐을 때 ‘복지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부자들의 기부를 늘릴 수 있는지요.

“정기 기부자에 대해 세제혜택을 확대하고 현금 이외에 부동산, 주식과 같은 자산 기부를 장려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야 합니다. 선진국처럼 정규 교과 과정에 기부와 자원봉사 등 나눔에 대한 내용을 넣어 어릴 적부터 나눔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국민 모두가 기부자를 존중하는 문화, 당당한 부를 인정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공동체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국내에서 기부 문화가 확산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경우 모금 첫해인 1999년에 213억원에서 지난해 3692억원으로 12년 만에 모금액이 17배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기부 선진국들에 비해 기업이나 단체의 기부 비중이 훨씬 큽니다. 물론 기업 기부도 중요하지만 기부문화의 저변이 탄탄하려면 개인의 기부 비중이 훨씬 늘어나야 합니다. 기부는 무조건 많은 돈을 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직장인이 월급 일부를 떼어 기부에 참여하는 ‘직장인나눔캠페인’, 국민연금 등 개인연금의 일부를 기부하는 ‘행복한연금나눔캠페인’ 등의 생활 속 나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정리=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 이동건 회장은

연매출 3000억 부방그룹 회장
한국인 첫 국제로타리클럽 수장

1938년 경북 경주 출신으로 서울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부친은 부방그룹 창업자인 고(故) 이원갑 회장이다. 1969년 부산방직공업에 입사 후 1979년부터 밥솥으로 유명한 생활가전업체인 부방테크론(현 리홈) 회장에 취임했다. 1994년부터는 부방그룹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방그룹은 부방테크론과 부산방직, 삼신정공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으며 연간 매출은 3000여억원에 이른다.

부산로타리클럽 지구 총재를 지낸 부친을 따라 1971년부터 세계 최대 봉사단체인 로타리클럽에서 활약했다. 2008년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제로타리클럽 회장에 선출됐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만해대상 평화부문상을 수상했다.

2010년 12월 임기 3년의 무보수 명예직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에 취임했다.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晦齋) 이언적 선생을 기리는 회재이언적기념사업회장도 맡고 있다.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1998년 11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개정안에 근거, 중앙과 전국 16개 시·도 지회의 통합 모금단체로 설립됐다. 이전까지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모금했는데 일부 공무원들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기관장 경조사비와 판공비로 유용했다는 사실이 적발되는 등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공공조직 대신 자율적인 민간 법정모금단체가 모금을 주도하자는 취지에서 당시 강영훈 전 국무총리가 공동모금회의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공동모금회는 의료전문 모금·지원기관인 한국의료지원재단이 지난해 7월에 출범하기 전까지 국내 유일의 법정모금단체였다. 모금액은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지원 신청을 받아 배분한다. 배분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경제·언론·종교·노동 및 사회단체 등 각계 전문가 14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의 심사를 거친다. 지난해 기준으로 연금과 복권기금, 보조금 등을 포함하면 공동모금회의 예산은 7621억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