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뒤흔들어 시장의 흐름을 바꿔놓는 사람을 경영학계에서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라고 부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람들이 기업을 초일류로 일구기까지의 과정은 널리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들이 일선에서 물러났을 때다. 게임체인저가 떠난 기업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그 실례를 ‘현재 진행형’으로 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다. 빌 게이츠는 2008년 6월 은퇴했다. 그의 뒤는 2000년부터 최고경영자(CEO)를 맡아온 스티브 발머다.

빌 게이츠가 떠난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사례가 스티븐 시놉스키 사장의 지난달 전격 퇴진이다. 그는 PC뿐만 아니라 모바일 기기에서도 쉽게 쓸 수 있는 컴퓨터 운영체제(OS) ‘윈도8’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다.

윈도8, 당초 기대에 못미쳐

윈도8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절대적인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는 윈도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은 채 혁신하겠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 PC와 모바일을 아우르는 ‘통합형’에 매달리다보니 어정쩡한 물건이 나왔다는 비판이 많다. 윈도8이 회사가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하자 시놉스키 사장이 그만둔 것으로 시장에서는 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 시장에서 선도자(first mover)이기는커녕 발빠른 추종자(fast follower)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경영관리와 판매지원 쪽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던 스티브 발머는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밑에 있는 사람들을 다그치는 스타일이다. 발머 CEO는 시놉스키 사장이 떠난다는 사실을 직원들에게 알리는 e메일에서 “좀 더 통합적인 제품을 더 빨리 개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직원들을 관리하는 일에 매달리는 현상은 게임체인저가 떠난 기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애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한 디자이너 스콧 포스톨 부사장이 지난 10월30일 퇴임했다. 이유는 있다. 그가 책임진 애플 지도에 오류가 많았다. 고객에게 공개 사과하라는 팀 쿡 CEO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 해임 사유였다.

애플도 관리형 기업으로 전락?

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폰 안테나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스티브 잡스는 개발 담당자를 자르기는커녕 적극 옹호했다. 쿡은 달랐다. 담당 부사장은 물론 실무 책임자인 리치 윌리엄슨까지 해고했다. 잡스가 없는 애플은 ‘실패를 최소화하겠다’는 관리형 모드로 들어간 듯하다.

올해 나온 아이폰5와 아이패드미니 등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애플도 게임체인저가 제시한 길을 그저 열심히 따라가는 기업으로 보인다.

이런 환경은 발빠르게 뒤쫓는 기업들에는 좋은 역전의 기회다. 삼성전자는 이미 스마트폰 분야에서 애플을 앞질렀고, 지금은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LG전자도 요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옵티머스뷰2와 옵티머스G 등 새로 선보인 스마트폰들이 시장에서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회사를 이끄는 사장도 세계 일류 제품(세탁기)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공고 출신의 야전사령관(조성진)으로 바뀌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같은 거목들이 허우적거릴 때 재빨리 추격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이유다.

현승윤 IT모바일부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