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를 깎는 건 모든 기업이 한다. 애플은 그럼에도 상생의 아이콘으로 미화돼 왔고, 국내 대기업들은 협력사를 후려치는 곳으로 지탄받았다.”

지난 29, 30일 본지가 연재한 ‘애플 신화의 두 얼굴’ 시리즈를 읽은 독자들로부터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애플을 너무 부정적으로 바라본 게 아니냐는 쓴소리도 있었고, “인식을 바로잡아줘 고맙다”는 말도 들었다. 애플이 납품가를 낮추기 위해 택한 ‘멀티벤더’ 전략 등은 공급망관리(SCM)의 고전적 방법이다. 대부분 기업이 주요 부품은 2~3개 협력사를 통해 받는다. 가격 협상에 유리하고, 한 곳에 문제가 생겨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서다.

애플에 독특한 점이 있다면 치밀하게 실행한다는 점이다. 1200억달러가 넘는 현금을 활용, 망할 수도 있는 회사에 선수금을 주거나 투자해 멀티벤더 구도를 유지한다. 일본의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지난 2월 파산한 일본 엘피다가 이후 몰려든 애플의 주문으로 풀가동하고 있다. 소니 히타치 도시바가 중소형 디스플레이사업을 구조조정해 만든 재팬디스플레이는 선수금을 받아 가동 중이다. 이들이 있어야 또 다른 납품업체인 삼성, LG 등을 견제할 수 있어서다.

원가를 분석해 값을 깎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반 기업은 구매담당 사원이 재무제표를 분석해 값을 낮추는 게 통상적이다. 애플은 전문가 수십명으로 이뤄진 팀을 보내 1주일 이상 샅샅이 감사한 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필요 없으면 가차없이 거래를 중단한다. 한 협력사 사장은 이렇게 토로했다. “주문량이 전 분기 100이었는데, 다음 분기엔 0이 되는 경우가 있다. 라인을 깔아놓고, 직원을 고용한 협력사가 어떻게 견디냐. 애플이 전통 제조업을 해보지 않아 그렇다.” 일본엔 애플 주문이 갑자기 끊어져 파산한 중소기업도 있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세상을 바꾼 기업이다. SCM도 어떤 의미론 혁신적이다. 협력사엔 힘들지만 애플은 30%대 영업이익률을 낼 수 있다. 그러나 IT 생태계는 자신만을 위한 혁신보다는 함께 누릴 수 있는 혁신을 필요로 한다. ‘둥근 모서리’ 디자인을 특허낸 뒤 소송으로 경쟁사를 가로막는 것보다, 앞선 디자인을 계속 창조하는 게 진정한 혁신이다.

김현석 산업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