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름만 빼고 다 바꾸자’는 기치를 내걸고 비상경영을 선포했습니다. 회사 조직을 개편하고 타당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을 조정하면서 3년을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공기업 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던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통합시켜 160조원(2011년 기준)에 육박하는 자산을 보유한 공룡 공기업 LH(한국토지주택공사)를 탄생시켰다. 거함 LH호의 초대 선장으로는 이지송 사장(72)이 임명됐다.

이 사장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108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부채였다. 이 사장은 3년 만에 LH를 빚더미에서 구해냈다.

▷LH가 출범 3주년을 맞았습니다.

“부임하면서 인생의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와서 재정상태를 들여다보니 부채가 108조원이나 됐습니다. 매년 20조원 이상씩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이었어요. 하루 이자만 100억원에 이르는 위기였죠.

게다가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라는 거대한 두 조직의 물적·인적 통합까지 완수해야 했습니다. 지난 3년은 하루 하루가 도전과 변화의 연속이었어요. 사업들을 구조조정하기 위해 직접 주민들을 설득하러 다닌 일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사업이 백지화되거나 연기된 지역의 주민들이 극렬하게 반발했어요. 제가 전국에서 68번이나 사진 화형식을 당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파주 운정신도시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70살이 넘은 제가 직접 길거리 텐트에서 자면서까지 주민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현재 LH의 재무 상태는 어떻습니까.

“이제는 LH 재무구조가 안정세로 돌아섰다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LH가 출범할 때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과입니다. 2009년 토공과 주공의 합병은 한마디로 거대 부실 공기업의 탄생이었습니다. 시장의 대접도 싸늘했어요. 매수자가 없어 채권을 발행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탄생과 동시에 생존위기에 내던져진 것이죠.

그러나 작년에는 전년 대비 당기순이익(7905억원)이 55% 증가했고, 판매실적(22조원)도 40%나 증가했어요. 매출액(15조3000억원) 역시 16% 증가하는 등 LH 경영의 청신호가 켜졌습니다. 올해 상반기엔 어려운 경제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27% 늘고 영업이익이 두 배 이상 증가했어요. 지난 4월에는 2007년 이후 5년 만에 신입사원도 뽑았습니다. 3개월의 수습을 마친 신입사원들에게 일일이 근무복을 입혀 줬습니다.”

▷사업구조조정과 함께 부정부패 추방을 강조했습니다.

“청렴은 개혁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에 있어서 신뢰는 생명이죠. 그런데 과거 토공과 주공은 부정부패와 비리의 온상이란 평가를 받았습니다. 통합이라는 대수술을 받은 이유지요. 그만큼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부정부패 한 건이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10만원만 받아도 ‘원스트라이크 아웃’이 되게 만들었고, 현대판 암행어사라고 할 수 있는 감찰분소를 설치했습니다.

입찰심사에서는 선정부터 심사 전과정을 CCTV를 통해 공개하는 클린심사제도를 전격 도입했습니다. 회사 내부에 청렴기획단이란 조직도 만들었어요. 제가 떠난 후에도 청렴한 조직 문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적으로 청렴하게 일할 수밖에 없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LH의 과제는 무엇입니까.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임대주택 부채 해결입니다. 지으면 지을수록 고스란히 빚으로 떠 안게 되는 임대주택사업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이 문제는 LH의 힘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임대주택을 지을 때 돈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임대주택의 임대료로는 관리비조차 충당할 수 없습니다. 임대주택 운영 적자가 매년 5000억원이 넘습니다. LH가 지금 갖고 있는 임대주택을 시세로 환산하면 약 36조원입니다. 서민 주거복지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LH의 빚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또 이제는 사업의 선순환구조를 완전히 정착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임대주택에서 나는 손실을 최대한 자체적으로 메워야 합니다. 지금은 그런 구조가 붕괴된 상황입니다. 사업지구 땅 중 일정 부분은 민간에 시장가격으로 팔 수밖에 없습니다. ”

▷그동안 직원들의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습니다.

“고생만 시킨 직원들에게 공기업 특성상 사장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전 직원이 급여 10%를 자진 반납하고, 주말·휴일도 없이 근무했어요. 땅 한 필지 집 한 채를 팔기 위해 길거리로 나선 직원들이 있었기에 3년 만에 경영정상화의 기반이 마련됐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정부경영평가를 잘 받아서 고생한 직원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해 주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이지송 사장은

△1940년 충남 보령 출생 △경동고·한양대 토목공학 박사 △1962년 건설부 근무 △1976년 현대건설 △1999년 경인운하 사장 △2000년 경복대 토목설계과 교수 △2003년 현대건설 사장 △2005년 경복대 명예총장 △2009년 한국토지주택공사 초대 사장 △2009년 아시아근대5종 연맹 회장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