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정부에 끌려다니지 않고 의사가 주체가 돼 모든 것을 바꾸겠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이 지난 4월 당선된 직후 던진 첫 공식 멘트다. 그는 당시 “제도를 바꾸기 위해 의사들의 총파업을 이끌어내겠다”고도 했다. 이 공언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노 회장은 4일 “전국 일선병원에 근무하는 봉급의사(봉직의)와 전공의(인턴·레지던트) 4만여명을 모아 의사노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봉직의의 처우가 열악하고 주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전공의도 인권 사각지대에 있다는 설명을 달았다. 그는 현행 의료법에 따라 진료 거부를 할 수는 없지만, 주 40시간만 근무하는 ‘준법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엄포를 놨다. 의협 회장의 이런 발언으로 의료계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포괄수가제 도입에 반발, 수술을 거부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가 철회한 지 1주일 만에 노조 설립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사회 각계에서는 즉각 우려가 쏟아졌다. 노 회장이 “의사도 노동자”라고 한 데 대해 특히 의료 수용자들의 정서적 거부감이 컸다. 이날 포털과 각 언론사 게시판에는 ‘집단이기주의의 극치’(@ssg), ‘거의 통제도 받지 않는 집단이 노조를 만드는 건 뭘 위해선가요, 단지 돈 때문인 걸 드러내놓는 행위인데’(@Um_***), ‘히포크라테스 선서 거두고 병 고치는 노동자라고 불러야겠네요. 국민은 노동자에게 신체와 목숨을 맡기지는 않습니다. 의사도 수입하고 이민 받읍시다’(@ljk**) 등 비난이 잇따랐다. ‘열악한 근무 조건에 처해 있는데, 잘못은 나중에 별도로 욕해주면 되지 않느냐’(@nacht)는 동정론도 없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국민의 생명을 책임진 공익집단이 노조라는 형태로 거리투쟁의 대열에 설 수 있느냐는 것이다. 투쟁은 궁극적으로 진료 공백을 담보로 잡고 있다. 환자나 시민들이 의사들의 집단 행동을 우려하는 이유다.

의료계 내부에선 “취임 3개월 된 비주류 의협 회장이 대정부 투쟁으로 지지층을 모으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근무여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면 될 일이다. 19대 국회엔 역대 가장 많은 6명의 의사들이 금배지를 달았다. 여기서 더 나간다면 ‘의사 선생님’이 아닌 이익집단의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이준혁 중기과학부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