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서 기술로, 다시 사람으로, 사람은 꿈꾸고 기술은 이룹니다.” 한 이동통신사의 광고 문구다. 사람을 중심에 둔 이 광고는 기술이 다시 사람을 통해 더 크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발전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과거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 기능(기술)을 중시했다. 그러나 개성, 가치 중심의 소비문화가 형성되면서 구매자의 심리를 꿰뚫는 감성(사람)이 구매결정에 점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첨단기술을 갖고도 시장에서 실패하는 사례는 많다. 1인용 운송 수단인 ‘세그웨어’도 그 중 하나다. 세그웨어는 2009년 타임지의 ‘지난 10년간 기술적으로 실패한 10대 제품’에 선정됐는데, 초기 애플의 고(故) 스티브 잡스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도 큰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는 등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같은 평가와 투자를 받은 이유는 스스로 균형을 잡는 지능적인 메커니즘과 몸을 기울이기만 하면 자동으로 나가고 방향전환이 되는 혁신적인 기술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도에서는 너무 느리고 인도에서는 너무 빠른 ‘세그웨어’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했다. 기술적으로는 훌륭했지만 소비자의 니즈(감수성)를 읽지 못한 탓에 자기만족적인 혁신제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되는 성공사례도 있다.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후지필름은 디지털카메라의 신기술 개발이 아닌 소비자를 연구함으로써 성공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다. 시장에서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던 즉석카메라를 보다 콤팩트한 스타일로 재창조해 20~30대 여성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비결이다. 젊은 소비자들이 즐겨찾는 미니홈피를 위한 즉석카메라, 셀프 카메라족을 위한 거울이 달린 미키마우스 모양의 접사렌즈는 디지털 문화 속에서 추억의 아날로그 공감대를 창출했다.

수많은 연구 개발자들이 지나친 기술 중심의 사고로 시장이나 소비자와는 무관한 기술 개발의 맹목적 함정에 빠지기가 쉽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원하고, 누릴 수 있는 기술을 먼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정부는 사람 중심의 따뜻하고 창조적인 기술개발을 위한 ‘R&D(연구개발) 36.5℃’ 전략을 지난해 발표하면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소외계층에게 필요한 맞춤형 기술 및 제품을 보급하는 기술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8일부터 오늘까지 사흘간 ‘2012 산업기술 R&D 전시회’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는 사람 중심의 창조적인 R&D 성과물과 첨단기술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장애인의 접근권을 높이는 따뜻한 기술도 체험할 수 있다. ‘함께하는 R&D, 더 따뜻한 세상’이라는 슬로건처럼 온 국민이 함께 참여해 우리나라 R&D의 변화를 공유하고 그 성과를 체험하는 축제의 장이 되길 바란다.

이기섭 <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