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 바로 한국이다. 2000년 고령화 사회(만 65세 이상 노인 비중 7%)로 진입한 지 18년 만인 2018년 고령 사회(14%)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고령 사회 진입까지 113년 걸린 프랑스와 견줄 때 놀랄 만한 속도다.

가장 큰 문제는 준비되지 않은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들의 은퇴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장년층은 산업화를 일궜지만 퇴직과 동시에 대거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기다. 외견상 국민·퇴직·개인연금의 3층 구조를 갖췄지만 소득대체율은 미국 독일 등 주요국의 절반 수준이다. 정세창 홍익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국민 소득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은퇴세대가 나온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라며 “고령화를 수십 년 먼저 경험한 선진국의 연금제도를 면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유럽 “사적연금 중심으로”

미국 독일 등 선진국들은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정부 재정 위주의 공적연금 제도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판단에서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중 3분의 2 정도가 공적연금을 축소하고 개인연금과 같은 사적연금을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며 “특히 방만한 국가경영으로 부도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사태를 계기로 이런 움직임이 더욱 뚜렷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타워스왓슨이 2010년 기준으로 각국의 전체 연금 중 사적연금 비중을 파악한 결과 한국은 32%에 불과했다. 반면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스위스 네덜란드 등 7개국 평균은 65%로, 두 배 이상 높았다.

미국은 사적연금인 자발적 개인연금(IRA)과 퇴직연금을 정책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세제혜택 한도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방식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 종전 연 4만달러(또는 연봉의 100% 중 적은 금액)인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에 대한 세제지원 한도를 지난해 4만9000달러로 확대했다. 근로자들이 선택적으로 추가 납입할 수 있는 금액 역시 1만1000달러에서 1만6500달러로 높였다. 만 50세 이상이라면 여기에다 5500달러를 더 넣을 수 있다.

영국에선 은퇴시장의 대부분을 민간 연금보험이 차지하고 있다. 2007년 신규 보험료가 110억파운드로, 전 세계 즉시연금 시장의 40%를 차지했을 정도다. 또 2004년 보험사들이 ‘표준하체 연금’을 취급하도록 했다. 장애인 등 기대수명이 짧은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깎아주는 게 특징이다.

○취약계층 지원은 더욱 강화

사적연금을 강화하는 선진국들도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은 오히려 늘리는 추세다. 계층 간 형평성을 고려한 정책이다.

대표적인 제도가 독일이 2002년 도입한 리스터연금이다. 가입자 소득에 비례해 보험료를 책정하지만 정부 보조금을 정액으로 지급하는 만큼 취약계층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구조다. 기본 보조금은 1인당 154유로다. 자녀 한 명당 185유로를 추가한다. 매년 2100유로까지 소득공제 혜택도 준다. 이 제도 도입 후 2002년 337만여명에 불과했던 독일의 연금 가입자는 2010년 1240만여명으로 급증했다. 전체 대상자 중 3분의 1 이상이 가입했다.

일본도 작년 저소득층의 최저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내용의 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 보편적 복지시스템의 한계를 인식하고 선택적 복지로 전환했다는 평가다.

오창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개인이 노후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할 경우 결국 다음 세대의 부담이 급증하기 때문에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연금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수 숭실대 보험수리학과 교수는 “해외에선 연금 적립 과정뿐만 아니라 수령 단계에서도 다양한 세제 지원을 하고 있다”며 “개인연금을 장기 또는 종신 동안 수령할 경우 비과세 등의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할 때”라고 조언했다.

국내에선 은행 보험 증권사 등 금융업계 간 차별성을 무시한 채 동일 규제와 균형발전 논리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