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산으로 올라가는 종북 논쟁
대한민국 판사가 ‘미국 놈의 개’라는 욕설을 들어야 하는 세상이다. 법정에서 벌어진 난동 소식을 들으며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에 장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소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라는 단체다. 이 단체 의장이라는 자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자 방청석에 있던 같은 단체 간부들이 재판부를 향해 돌진했다. “재판장 이 ×× 너 죽을 줄 알아. 미국 놈의 개”라는 욕설과 함께 터져 나온 구호가 ‘국가보안법 철폐’였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대법원이 이미 1997년 이적단체로 규정한 집단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바를 실천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성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단체가 여전히 해체되지 않은 채 법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도 따지고 보면 헛것이다. 법의 미비로 이적단체조차 해체할 능력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많은 국민들은 국가보안법을 여전히 독재시대의 악법으로 인식해 보완의 대상이 아닌, 철폐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 사회에 종북이 미친 해악은 그렇게 크다. 하기야 많은 사람들이 설마했다. 안철수 교수 말마따나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 있겠느냐고. 그나마 통합진보당 사건으로 종북세력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알게 된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법정에서 소란을 일으킨 범민련 남측본부야말로 말 그대로 뼛속까지 종북인 단체다. 그들의 사고 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벽제공원묘지를 지나 송추 쪽으로 넘어가면 보광사라는 절이 나온다. 2005년 이곳에는 6·25전쟁 당시 빨치산 남로당 출신과 간첩을 추모한다는 명목 아래 소위 통일애국투사묘역이라는 것이 조성된 적이 있다. 그 작업을 주도한 범민련 남측본부의 명예의장 이종린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 제국주의의 점령지에 동지들을 모셔 송구스러우니 반드시 진정한 우리 조국 땅에 모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맞다. 그들에게 한국은 미제의 점령지일 뿐, 그들의 진정한 조국 땅은 북한이다.

통일애국투사묘역이 만들어진 바로 그 시점에, 인천에서는 맥아더 동상 철거 시위가 벌어졌다. 이 난동을 주도한 단체 역시 범민련 남측본부였다. 당시 의장이던 강희남의 주장은 기가 차지도 않는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적화통일을 가로막아 남한이 양키의 식민지가 됐다니. 이렇게 반미와 종북으로 무장해 불법과 이적행위를 일삼아 온 것이 바로 범민련 남측본부인 것이다.

이들의 이적행위는 여전하다. 부의장이라는 자가 무단으로 북한으로 넘어간 지 석 달이 가깝다. 인민복을 입고 북한 곳곳을 누비며 “반인륜적 이명박 정권을 대신해 사과하러 왔다”는 망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가 바로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 통합진보당 이정희·심상정·유시민 공동 대표 등과 함께 야권 연대 타결 공동 선언 행사에 참석한 노수희다. 열흘 뒤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남한의 진보정당들이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 12월에 대통령 선거를 향해 ‘련대련합’을 적극 실현해 나가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총선 개입에 나섰고, 노수희는 이틀 뒤 북한으로 향했다. 6·25전쟁 직전의 혼란상을 다시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적단체는 이렇게 야권 통합의 한 축이 돼 제도권에 침투하기 시작했고, 종북 세력들은 여세를 몰아 떼거지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이들이 결코 북한과 무관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 북한이 이번엔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해 종북 논쟁 물타기에 나섰다. 박근혜 정몽준 김문수가 방북 때 한 말과 행동을 공개하면 남조선 사람들이 까무러칠 것이라며 말이다. 진보당은 물론 민주당까지 종북 논쟁의 화살을 새누리당으로 돌려 매카시즘 역공세에 나선 참이다. 하지만 이적단체와 연대를 추진하고 종북 세력의 국회 진출 발판을 마련해준 진보당과 민주당을 비난해봐야 무엇 하겠는가. 정작 기가 막히는 건 역풍을 걱정해 종북 논쟁에서 발을 빼려는 새누리당이다. 급기야 이석기·김재연 제명 문제는 국가관이 아닌 선거부정 때문이라는 논평이 새누리당에서 나오고 있다. 총선 승리를 야당의 헛발질 덕분이 아닌 제 실력으로 믿는 새누리당이다. 위기에 처한 국가정체성이 걱정될 뿐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