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장마가 시작돼야 할 텐데 큰 일입니다.”

요즘 발전업계 사람들이 농담조로 하는 푸념이다. 원자력발전소 3기, 화력발전소 2기가 고장 및 점검 등으로 가동을 멈춘 상태에서 때 이르게 찾아온 무더위로 전력수급 상태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력수요관리 기금마저 바닥날 상황에 처했다. 소관부처인 지식경제부가 지난 5일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은 수요관리기준인 예비전력 500만㎾의 상한선을 450만㎾로 하향 조정한다는 것이었다.

전력기금을 통해 절전기업들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계속 늘려나가기 어려운 만큼, 수요관리 기준을 50만㎾ 낮춘다는 얘기다. 기금문제만 놓고 보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에너지 수급안정 차원에선 기준을 올려도 시원찮을 판에 거꾸로 내린 셈이다.

지난해 9월 대규모 정전사태로 장관까지 경질됐지만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대부분 이 같은 미봉책 투성이다. 이상고온으로 한 달 앞서 시행한 하계전력수급대책도 마찬가지다. 대책에는 5~6월로 예정됐던 9대 석탄발전소의 계획정비를 가을로 미룬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정비를 미룬 발전설비가 멈춰서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이 없다. 발전업계의 한 임원은 “올 들어 단 한 기의 발전설비도 정비하지 못해 여름을 어떻게 날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해처럼 올 가을에도 여름더위가 계속될 경우 문제다. 밀린 정비를 가을에 몰아서 하다가 제2의 정전사태가 날 수도 있다.

올해 전력수급이 빠듯하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일부 원전과 화력발전소가 가동을 멈췄고 이상고온 현상은 수년째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경부는 무슨 배짱에서인지 처음에 전력 부하 관리 사업비를 확충하기는커녕 지난해보다 22억원 적은 666억원으로 책정했다. “지경부는 지금이라도 기상청 자문을 받는 게 낫겠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대대적인 절전운동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대통령까지 직접 재킷을 벗고 ‘휘들옷’ 입기 캠페인에 나섰다. 에너지 과소비 생활패턴을 개선하는 것이 국가적인 과제임은 분명하지만, 정부가 스스로 예비전력 관리기준을 낮춰야 할 상황에까지 내몰린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몇 달 앞도 내다보지 못한 전형적 정책 부실이다.

조미현 경제부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