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제를 두고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포괄수가제는 의료행위에 따라 진료비를 지급하는 게 아니라 질병에 따라 미리 정해진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다. 굳이 표현하자면 정액 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정부는 과잉 진료를 줄여 건강보험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는 반면 의협은 저질의료를 양산해 국민의 선택권, 건강권을 침해할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정부는 오는 7월부터 백내장 수술 등 7개 외과 질병 치료에 대해 병·의원급부터 단계적으로 포괄수가제를 적용한다는 방침이지만 의협은 파업도 불사할 태세다.

정부와 의협의 대립은 현행 진료비의 구조적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낮은 의료수가는 온갖 과잉검사와 편법진료를 낳고, 이는 다시 건보재정의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진료비 정가제나 다름없는 포괄수가제를 들고 나온 것은 바로 그런 배경에서다. 포괄수가제 자체만 떼어놓고 보면 의사협회 말마따나 이것이 과연 정답인가 하는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 같은 질병이라고 해도 주사 검사 등의 추가 여부나 치료기간, 재료, 치료 기술 등에 따라 진료원가가 달라질 수 있는데 정액 진료비만 받으라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이렇게 되면 의사들이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고민은커녕 어떻게 하면 진료 원가를 아낄지에만 골몰할 게 뻔하다.

그러나 의료 수가를 현실화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의사들은 환자의 선택권, 건강권을 운운하지만 정보 비대칭성이 높은 의료서비스의 특성상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과잉검사, 편법진료 등 의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판을 쳐도 환자들로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진료 현장에서는 그런 문제점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 이는 의협도 인정하고 있다. 의사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의사가 환자의 건강을 위해 일정한 재량권을 갖겠다면 그에 앞서 높은 직업윤리를 담보할 장치부터 갖춰야 마땅하다. 이는 의협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의료 수가 현실화와 함께 의사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내지 않는 한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