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멈춘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속도를 높이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제로백(0→100㎞/h)’이라고 부른다. 국어사전에 있는 단어는 아니지만 고성능 스포츠카의 성능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용어다. 육상선수에 비교하면 단거리 100m를 누가 가장 빠른 시간에 주파하는지 기록을 측정한 것이다. 포르쉐, 람보르기니 등 유럽산 스포츠카의 제로백은 평균 3~4초대다. 한국경제신문과 한경닷컴은 국내 완성차 업체 5개사의 비공식 자료를 취합해 제로백이 빠른 국산 차종을 꼽아봤다.

현대 '제네시스 쿠페 3.8' 5.9초 걸렸다

◆제네시스 쿠페 3.8, 국산차 제로백 1등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말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로 내놓은 뉴 제네시스 쿠페 3.8은 국산차 중 단거리 가속이 가장 빠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5.9초다. 이전 제네시스 쿠페 3.8은 6.5초였지만 신형 모델은 6초 이내에 주파한다. 파워트레인은 3.8ℓ 람다 직분사 엔진에 후륜구동형 8단 자동변속기를 얹었다. 성능은 최고출력 350마력, 최대토크 40.8㎏·m이다. 다음은 기아자동차의 첫 후륜구동(뒷바퀴 굴림) 세단 K9 3.8로 제로백이 6.6초다. 배기량이 아래급인 K9 3.3(7.4초)보다 0.8초 앞선다.

제로백 평가에선 가솔린 터보 엔진이 상대적으로 높은 순위에 올랐다. 현대차 쏘나타 터보와 기아차 K5 터보는 시속 100㎞ 가속까지 6.9초 만에 끊는다. 두 차종에 얹은 2.0ℓ 직분사 터보 엔진은 그랜저 3.0ℓ 람다 엔진보다 제로백이 1초 정도 빨랐다.

이는 터보차저 기술 덕분이다. 터보차저는 엔진에서 나오는 배기가스의 압력으로 압축기(터보)를 돌려 엔진으로 들어가는 고압의 공기를 더 많이 주입해 출력을 높여주는 장치다. 최근 현대차가 출시한 벨로스터 터보도 동일한 기술을 적용해 배기량 1600㏄ 터보 엔진으로 3300㏄ K9 수준의 제로백을 달성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올뉴 SM7 3.5가 8.4초로 가장 빨랐다. 한국GM은 쉐보레 크루즈 2.0 디젤이 8.5초, 쌍용자동차는 5000cc급 체어맨W 리무진이 6.7초를 나타냈다.


◆벨로스터 터보, ‘수입차보다 빠르다’

수입차보다 제로백이 빠른 국산차도 있다. 현대차 벨로스터 터보는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7.4초면 충분하다. BMW 320d(7.6초), 폭스바겐 골프 GTD(8.1초) 및 시로코 R라인(8.1초) 등 유사한 배기량의 독일차보다 빠르다.

현대 '제네시스 쿠페 3.8' 5.9초 걸렸다
그랜저 3.0은 베스트셀링 수입차 BMW 520d(8.1초)보다 0.2초 빠르다. 한국GM 캡티바 2.2 디젤은 9.4초로 아우디 A4 2.0 TDI(디젤)와 같다.

한국GM이 수입·판매하는 쉐보레 스포츠카 콜벳과 카마로는 미국 GM 본사에서 들여온 수입차여서 국산차 순위에서 빠졌다. 국내 판매 중인 콜벳과 카마로의 제로백은 각각 4.3초, 5.9초다.

◆“제로백, 정확한 데이터 뽑기 힘들어”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은 제로백 정보를 제품 소개서에 명시하지 않는다. 출력·토크·연비 스펙(제원)과 달리 제로백 수치는 정확한 데이터를 뽑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0.1초를 다투는 찰나의 순간은 운전자의 운전 기술이나 도로 여건, 날씨 등 다양한 외부 환경에 따라 충분히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우 쉐보레 레이싱팀 선수 겸 감독은 “같은 엔진이라도 튜닝, 타이어·휠, 구동 방식(전륜·후륜), 차체 무게 등에 따라 제로백은 달라질 수 있다”며 “제로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타이어만 잘 선택해도 속도는 얼마든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훈 한경닷컴 기자 lenn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