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긁어부스럼' 피하려는 서울시
서울시내 뉴타운·재건축 추진지역 주민들이 서울시를 잇따라 성토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실태조사에 반대하는 한남뉴타운 주민이 시청 앞마당인 서울광장에서 궐기대회를 열었다. 29일에는 개포지구 주민들이 재건축 구역지정을 촉구하는 대회를 가졌다. 오는 16,19,29일에도 집회가 예고돼 있다.

개발 사업을 둘러싼 주민 시위는 새롭지 않다.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집단 행동은 ‘떼쓰기’로 인식되기도 했다. 최근 뉴타운·재건축 주민이 벌인 시위는 서울시 주택정책과 관련된 것들이다. 소유자와 거주자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구역 해제를 추진하는 ‘뉴타운·정비사업 신(新)구상’,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재건축 단지 내 소형·임대아파트 공급 확대 등에 대한 반발로 요약된다.

후속조치 없는 서울시에 반발

‘박원순식 정책’은 개발 위주의 기존 정책에 대한 보완조치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서울시가 그동안 보여온 행보를 따져보면 주민 반발이 이해되는 대목도 적지 않다. 서울시는 지난 1월 말 발표한 뉴타운 대책에서 추진위원회나 조합이 있는 구역도 해제 절차를 밟을 수 있게 했다. 토지 등 소유자 10~25% 이상이 동의하면 구청장 실태조사를 거쳐 기존 동의자의 2분의 1이나 3분의 2, 또는 토지 등 소유자 과반수가 동의하면 해제하는 방식이다. 추진위나 조합이 설립된 지역의 주민들은 “해제 동의율이 설립 동의율(추진위 50%, 조합 75%)보다 낮은 것은 사업 취소에 무게를 실은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후속 조치의 불확실성도 반발을 사고 있다. 실태조사 동의율, 추진위 및 조합 해체 동의율은 서울시 조례로 정하도록 돼 있지만 아직도 무소식이다. “시의회 협의 등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서울시 해명이다. 하지만 경기도는 관련 조례안을 지난달 이미 입법예고했다. 개포지구에 요구한 소형 아파트 확대 비율도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부 단지는 추진위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비율을 정해 주민 설문조사까지 벌였지만, 서울시는 어떤 지침도 언급하지 않았다. “해당 구청 및 주민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모두다. 행정의 불확실성으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주민들이 반발하는 배경이다.

형평성 잃으면 시정 신뢰 추락

일관성·형평성을 잃은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개포지구 주민들은 “서울시 정책을 반영해 재건축 계획을 세웠는데 시장이 바뀌자 비율 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행정 폭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업을 끝낸 다른 뉴타운·재건축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물론이다. 뉴타운·재건축은 사업성을 키워 주민 부담을 줄이는 사업 구조를 갖고 있어 공공성 강화는 고스란히 주민 부담 증가와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법과 제도는 처음과 끝이 같게, 균형되게 적용돼야 한다. 그래야 불평·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정의의 여신 디케가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천칭 저울을 들고 있는 이유다.

서울시가 뉴타운·재건축에 대한 확실한 기준을 내놓지 않자 일부에선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다. 재산권 침해로 이어지는 기준을 발표했다가 ‘4·11 총선’에서 야권에 ‘긁어 부스럼 되는’ 부작용을 만들지 않으려고 시간을 끌고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시는 이런 의혹을 되도록 빨리 풀어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이 가져다 주는 것은 서울시정 신뢰도의 추락뿐이다.

박기호 건설부동산부장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