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 vs 혼성모방…재미와 감성의 한계

조일훈 IT모바일부장 jih@hankyung.com
[한경데스크] 연평도에 대한 영화적 상상력

영화 '고지전'은 흥행과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비평에 관계없이 6 · 25전쟁에 대한 실체적 접근을 이루지 못했다. 남북대치 상황의 역사적 맥락을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피차간에 원하지 않는 전쟁터에 내몰렸다는 아군과 적군의 묘한 동류의식이 스토리의 뼈대를 이룬다. 제법 많은 관객들을 모았던 '웰컴 투 동막골'이나 '적과의 동침'에서도 전쟁에 대한 진지한 리얼리티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들 영화는 2000년 최고의 히트작 'JSA 공동경비구역'의 아류 내지는 복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선 가해자와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아 구분 자체의 의미가 없다. 영화속의 남 · 북한 병사들이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내통'을 하는 상황 설정이 가능한 이유다.

하지만 이런 구도는 영화적 상상력을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역사(현실)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문화 비평가들은 이런 영화들이 '혼성모방(pastiche)' 기법을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혼성모방은 패러디와 함께 20세기 후반 새로운 담론으로 확산된 포스트모더니즘의 형식적 특징 중 하나다. 둘 다 모방과 흉내의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패러디가 풍자와 조롱이라는 배후동기를 갖고 있는 데 비해 혼성모방에는 어떤 종류의 기준이나 관습도 없다. 그저 사실이나 사물을 그 본질에 관계없이 특정 스토리의 흐름 속에,콘텐츠의 내용물로 채용할 뿐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는 현실 정치와 보수세력에 대한 도전적 패러디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영화 스토리 전개를 위해 필요한 시간 공간 인물 등을 임의로 설정하는 행위는 혼성모방에 가깝다. 올해 7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영화 '써니'가 불량 여학생들의 패싸움과 최루탄 자욱한 거리의 민주화 운동을 같은 화면에 담아낸 것,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을 경쾌한 팝송에 실어 일종의 군무처럼 연출한 장면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의 노스탤지어라는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 끌어들인 단순한 장치들이겠지만,그저 재미를 이유로 간단히 차용되고 버려진다는 사실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인식의 조작과 사실의 왜곡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는 어쩔 수 없이 상업적이다. 하나의 패턴이 성공하면 질릴 때까지 반복적으로 활용된다. 대중은 그들의 기호와 취향을 영리하게 자극하는 일정한 공식과 규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아,이거 예쁘네' '아,그거 재밌네'와 같은 감성적 판단을 더 중시한다. 이성과 합리적 판단은 부차적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감성과 직감만으로는 복잡한 현실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수도,그 솔루션을 모색할 수도 없다. 그래서 때로는 감성에 호소하는 혼성모방이 무분별한 패러디보다 더 위험하다.

굳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전쟁영화들의 꼬투리를 잡은 이유는 연평도 포격사건 1주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적군과의 호혜로운 소통이라는 '고지전'속의 영화적 장치는 아무리 봐도 민간 가옥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포격을 당했던 연평도와의 접점을 찾을 수가 없다.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 젊은 세대가 전쟁의 참화를 실감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영화적 상상력에 잘못된 사실과 허위의식을 덧씌워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조일훈 IT모바일부장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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