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아프리카 등에 헌옷 수출…올 매출 1300만달러”
경기도 고양시 식사동의 기석무역(대표 구성자). 파주와 경계 지역에 있는 이곳에는 해외 바이어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기자가 이달 중순 이곳을 찾았을 때도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2명의 바이어가 상담을 하고 있었다. 헌옷을 사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기석무역이 연간 수출하는 헌옷은 약 1300만달러에 이른다. 산더미처럼 쌓인 헌옷은 쓰레기가 아니라 달러박스인 셈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와 60년대만 해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중고의류를 구해 입는 게 유행이었다.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군들이 입다 버린 군복은 질겨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를 염색해 입는 경우가 많았다.
“동남아·아프리카 등에 헌옷 수출…올 매출 1300만달러”
5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헌옷을 구해다 입는 나라가 수십개국에 이른다. 헌옷 수출에 앞장서는 기업 중 하나가 경기도 고양의 기석무역이다. 이 회사의 구성자 대표(49) 방에는 세계지도가 걸려 있고 수출지역이 표시돼 있다. 모두 32개국에 이른다. 올 들어서만 10개국 가까이 늘어났다.

수출국을 보자. 먼저 아시아에는 몽골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이라크 터키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등이 들어 있다.아프리카는 탄자니아 케냐 남아공 카메룬 가나 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 등이다. 이 지역의 수출 중심 국가는 가나다. 남미는 칠레 페루 볼리비아 등이다.

구성자 대표는 “수출액이 지난해 1200만달러에서 올해는 1300만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헌옷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나온다. 하지만 한국의 헌옷이 인기를 끄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한국인들은 유행에 민감하다. 유행이 조금만 바뀌어도 입던 옷을 버린다. 헌옷이 아니라 사실상 새옷이다. 게다가 한국의 헌옷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색상이 화려하다. “일본만 해도 색상이 단조롭지만 한국은 외의 내의 할 것 없이 컬러풀하고 다양해 외국인들이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둘째, 분리수거가 잘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옷 종이 음식물쓰레기 플라스틱을 철저하게 분리 배출한다. 따라서 헌옷을 수거하기가 쉽다. 구 대표는 “해외 어디를 가 봐도 우리처럼 분리수거를 잘 하는 나라를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동남아·아프리카 등에 헌옷 수출…올 매출 1300만달러”
기석무역에는 대형 트럭이 쉴새없이 드나든다. 헌옷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들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흐른다. 컨베이어 벨트 옆에는 직원들이 바쁘게 손을 놀린다. 내의 외의 청바지 등 용도별로 나누고 남성용 여성용으로 분류한다.

얼룩이나 때가 많이 묻은 것은 대형세탁기와 탈수기를 통해 빨지만 대부분은 그냥 구분해서 포대자루에 포장한다. 그 정도로 깨끗하기 때문이다. 아예 입을 수 없을 정도로 낡은 것은 걸레용으로 판다. 단 한 벌도 버리는 게 없다. 분류된 옷은 80~100㎏ 단위로 포장된 뒤 40피트 컨테이너에 차곡차곡 실린다.

주력 수출품은 의류지만 신발 커튼 카펫 등도 취급한다. 아프리카에선 맨발로 다니는 경우가 많다. 또 뙤약볕에서 옷을 제대로 못 입은 채 일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들에게 한국의 헌옷은 피부를 보호하고 헌신발은 가시덤불로부터 발을 보호해준다.

구 대표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다. 어려운 가정살림에 도움을 주려고 경기도 안산에서 여동생과 단둘이서 봉고차로 몰며 헌옷을 수집해 고물상에 팔았다. 그는 “헌옷은 쓰레기인 줄 알았는데 모아서 팔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여동생과 온 동네를 다니며 헌옷을 모아 팔았는데 하루 10만원을 벌 정도로 수입이 괜찮았다. 이 과정에서 당시 한국에 와 있던 외국인 근로자에게 입을 만한 헌옷을 구해줬다. 그러자 그 외국인 근로자는 이 정도 옷이면 자국에서 팔아도 되겠다는 의견을 내놔 조금씩 수출을 시작하게 됐다.

사업에 대한 확신을 가진 그는 2000년 경기도 고양에서 창업한 뒤 본격적으로 수출을 시작했다. 외국인들은 입소문을 통해 찾아왔다. 몇몇 바이어는 당초 기석무역에서 일하다가 만기 출국한 뒤 무역업체 대표로 변신해 이곳에서 헌옷을 수입해 팔고 있다. 당초 기석무역에서 일할 때도 구 대표는 누나처럼 먹는 것 입는 것 등을 알뜰하게 챙겨줬다. 그러다 보니 이들과는 바이어와 수출업체 대표 관계가 아니라 가족처럼 끈끈한 정을 유지하고 있다.

구 대표는 업무차 아프리카 가나를 찾았다가 맨발로 가시에 찔려가며 일하는 근로자들의 모습을 보고 폐군화를 취급하는 곳과 오랫동안 교섭한 끝에 이를 공급받아 수출하기 시작했다. 그는 “헌 군화를 태우려면 돈이 들 뿐 아니라 오염방지 투자도 필요한데 이를 수출하니 달러도 벌고 환경 오염도 막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수출을 꾸준히 늘릴 수 있었던 것은 신속한 결제를 통해 헌옷을 안정적으로 수거했고 바이어들이 원하는 대로 제품을 정확히 분류해 공급한 데 따른 것이다. 협력업체 및 바이어와 쌓은 돈독한 신뢰가 밑천이 된 것이다. 헌옷을 취급하는 곳은 전국에 걸쳐 있다.

구 대표는 선발주자가 아니다. 하지만 수도권뿐 아니라 충청도 여수 익산 등지에서도 헌옷을 싣고 이곳을 찾아온다.이는 납품한 헌옷에 대해 제값을 쳐주고 제날짜에 주는 등 결제조건을 정확히 지키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기석무역과 거래하는 협력업체는 약 50개에 이른다.구 대표는 “협력업체가 있기에 우리가 수출을 할 수 있고 임직원이 밥먹고 사는 것 아니냐”며 “이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어들의 요구는 여러 가지다.실크로 된 여성용 상의를 보내달라든지 면티를 보내달라든지 등 세부적인 요구가 많다. 그런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많은 의류를 모아야 하고 이를 세분해서 정확히 포장해야 한다.

“동남아·아프리카 등에 헌옷 수출…올 매출 1300만달러”
기석무역은 고양시 식사동 지영동 관산동 등 3곳에 공장을 두고 있다. 종업원은 150명에 이른다.극소수 외국인을 빼면 대부분 50대~60대 인근 주민들이다. 고용창출에도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구 대표는 “수십명의 근로자는 정년퇴직 후 우리 회사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경우”라고 설명했다.외국인 근로자에겐 틈나는 대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등 정을 뜸뿍 담아 대우한다. 개도국에서 바이어들이 찾아오면 숙식에서 비즈니스에 대한 조언까지 제공한다. 단순한 바이어가 아니라 비즈니스 파트너로 대우하는 것이다.

구 대표는 “헌옷 수출은 달러획득 고용창출 환경보호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는 비즈니스”라며 “중국이 추격해오고 있지만 더 좋은 의류를 더 좋은 조건으로 수출하면 시장은 얼마든지 열릴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의 목표는 수출국을 50개국으로 늘리는 것이다. 구 대표는 “특히 아프리카와 서남아 중남미의 경우 시장 개척 여지가 많다”며 “신뢰를 쌓으면 시장은 얼마든지 열릴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