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는 다인종 · 다민족 국가다. 전체 인구의 60%가 원주민과 백인 혼혈인종인 메스티조와 흑인과 백인 혼혈인 물라토이며 흑인이 13%,백인이 11%,인디오가 10%,중국인이 5%,기타 인종 1%로 구성돼 있다.

그렇다 보니 현지 비즈니스 상권도 유태계,인도계,아랍계 3대 상인들이 주도하고 있다. 중국계도 약 15만명의 규모를 바탕으로 소형 슈퍼,식당 등 소매 업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콜론자유무역지대에서 무역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 교포 무역인이 운영하는 20여개 사도 도 · 소매업에 종사하고 있다.

여러 인종과 민족이 섞여 있고 오랫동안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으면서 비즈니스 문화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미국식 상(商)관행과 중남미식,또는 아랍식 상관행이 복잡하게 혼합됐기 때문에 '파나마의 상관행'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유태계 상인들은 자기들만의 커뮤니티가 잘 형성돼 있고 서로 간에 비즈니스를 잘 돕는다. 빈털터리로 시작해서 1년 만에 번듯한 사업체를 차리거나 파산 일보 직전에 도움을 받아 기사회생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방인과의 비즈니스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거래관계를 유지하고 신뢰를 쌓는다면 작은 가격 차이로 거래선을 쉽게 바꾸지는 않는다.

아랍인들은 대부분 무슬림으로 라마단 의식을 지키고 아랍음식을 즐겨 먹는 등 고유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인들은 전자유통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중남미와 중동의 비즈니스 문화를 대표하는 키워드 '아미고'와 '인샬라'는 이 곳에서도 잘 들어맞는다. 스페인어로 친구란 뜻의 '아미고'는 친구처럼 친밀감을 형성하는 게 거래를 트고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반면 '인샬라'는 '신의 뜻대로'란 뜻의 아랍어로 빨리 확답을 주지 않고 질질 시간을 끌면서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아랍 상인들을 빗대서 하는 말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은 여러 문화가 혼합된 파나마의 상관습을 설명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파나마에서 '아미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이고 자주 얼굴을 보며 친밀감을 형성해야 하는데,현지에 지사를 설립하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은 일이다.

파나마는 가족 중심주의와 온정주의 문화가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가족과 친족이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운영하는가족 기업 형태로 소규모다. 온정적이다 보니 큰 수주나 거래 건은 친분관계에 의해서 많이 좌우된다.

'인샬라'의 중남미 판은 '가능해요'란 뜻의 '포시블레(posible)'가 아닐까 싶다. 상담을 하면서 모레까지 답을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포시블레'라는 말을 듣게돼도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고,한 번 생각해 보겠다는 완곡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인샬라'는 이들의 시간관념에서도 볼 수 있다. 약속을 정하면 30분 정도 늦는 것은 다반사다. 늦어도 별로 미안해 하는 기색이 없고,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이런 시간관념은 비즈니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한 번 만나서 곧바로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 데 비해 이곳 사람들은 성격도 느긋하고 행동도 느리기 때문에 빨리 결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파나마 상인들은 받는 데는 익숙하지만 주는 데는 굉장히 인색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우리 기업 출장자들이 파나마 거래처를 방문해서 놀라는 것 중에 하나가 거래처로부터 밥 한끼 제대로 못 얻어 먹는다는 점이다. KOTRA 파나마 센터가 현지 마케팅을 지원하고 있는 S사 출장자는 "그 먼 길을 달려와 제품 출시와 관련된 긴 협의를 했는데 식사 접대 한 번 받지 못했다"고 섭섭해 한 적이 있다.

중남미 시장 진출의 관문인 파나마의 여우 같은 상인을 공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좀 더 주더라도 좋은 '아미고' 관계를 형성하고,인내심을 갖고 문을 두드린다면 '롱런'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