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선물세트를 들이지 않은 지 오래됐습니다. "

서울 회현동 남대문시장에서 25년 동안 김과 포 등 건제품을 팔고 있는 정우열 씨(50).추석 연휴를 코앞에 두고 대목경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구니에 각종 김을 담아 명절 선물용으로 내놨지만,지금은 아예 만들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가게 앞의 간이의자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던 정씨는 "남대문시장에서 추석 대목은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라며 씁쓸해 했다. 그나마 외국인 관광객 덕분에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명절을 앞두고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이 재래시장이지만,올해도 여전히 썰렁했다.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하나 같이 '경기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남대문시장에서 인삼 제품을 팔고 있는 김용수 씨(33)는 "작년에는 기업들이 선물세트를 대량으로 사갔지만 올해는 단체 주문이 전혀 없다"며 "지금까지 추석 선물세트는 3만원대 편삼 2세트 나간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 시장에서 20년 동안 장사했다는 한 생선 판매상은 "잘될 때는 800g 동태 세트를 하루에 200개씩 팔았는데,올해는 판매량이 작년의 60%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걱정했다.

예년보다 열흘 정도 이른 추석이 야속하다는 상인들도 있었다. 경동시장에서 대추 밤 등 제수과일을 판매하는 임호진 씨(30)는 "제사상에 올라가는 햇대추가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탓인지 손님 수는 작년의 절반 수준"이라고 푸념했다. 남대문시장의 한 상인은 "깨끗하고 편리해서 백화점에 가겠지만 인근 백화점 앞에 줄 서 있는 차들을 보면 속상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재래시장 상인들은 전용 상품권인 온누리 상품권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아직은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은 편이지만 온누리 상품권이 재래시장의 경기를 지필 불씨로 남아 있는 셈이다. 경동시장 과일가게에서도 40대 여성이 3만원어치 과일을 사면서 '온누리 상품권' 1만원권 2장과 현금 1만원으로 계산했다. 이곳 상인은 "기업들이 보너스로 나눠주는 온누리 상품권으로 결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조미현 생활경제부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