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로라가 끝내 구글에 팔리는 신세가 됐다. 휴대전화를 최초로 상용화한 모토로라는 세계 통신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9년 아폴로 11호를 탄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내디딘 뒤 "인류를 위한 거대한 도약(one giant leap for mankind)"이라고 외친 것도 모토로라 무전기를 통해서였다.

모토로라는 1990년대 들어 휴대폰 시장 1위 자리를 노키아에 뺏긴 뒤 2000년 초까지 2위권에 머물렀으나,이후 삼성전자 LG전자 등과의 경쟁에서 밀린 데다 최근 애플이 몰고온 스마트폰 열풍에서 소외되면서 존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었다.

기업 생태계에서 영원한 1등은 없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2등도 없다는 게 진리다. 시간의 문제일 뿐 끝내 1등으로 올라서지 못하면 3등,4등으로 밀릴 수밖에 없고 결국엔 도태되게 마련이다.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매년 탈락하는 기업은 1990년대 초 20여개 수준에서 2000년대 들어 40여개로 증가하는 추세다. 위로 올라가지 못해 도태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하기'로는 1등이 될 수 없다

해외 기업 중에서는 P&G와 펩시 등이,국내 기업으로는 현대 · 기아자동차와 KT 등이 최근 선도기업 자리에 올랐거나 1위를 위협하는 기업으로 약진해 주목받고 있다. 한 수 아래의 '2위 기업'이라는 멍에를 벗어던진 이들 기업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100년 장수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은 대부분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쉼없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GE의 DNA를 본받으려는 기업들이 지금도 줄을 잇는다. GE의 6시그마는 한때 품질관리 시스템의 대명사로 불리며 업종에 상관없이 경쟁적으로 도입됐다. GE의 교육 프로그램도 인재 양성의 교범이 됐다. GE가 리더 양성을 위해 세운 크로톤빌연수원은 글로벌기업 인재 사관학교로 불릴 만큼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경영자들로 붐빈다.

국내외 기업들 사이에선 얼마 전까지 '도요타 따라하기'가 트렌드였다. 2009년 대량 리콜 사태 이후 주춤해졌지만 GM을 넘어 세계 시장을 호령한 도요타가 '가이젠(改善)'이라는 생산성 혁신운동을 통해 빠르게 성장한 비결을 배우려는 열풍이 대단했다. 지금도 가이젠을 비롯한 도요타 웨이(way)를 통해 도요타가 명성을 되찾을 것이라는 일본 안팎의 기대는 여전하다.

하지만 1등 기업 GE와 도요타 따라하기를 통해 1등으로 올라설 수는 없다는 게 정설이다. P&G와 펩시,현대자동차,KT는 리딩 기업들의 성공 사례를 배우긴 했지만,그대로 답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1등 또는 선두권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1등 기업의 세 가지 포인트

GE의 성공비결을 분석한 많은 보고서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파괴 경영'이다. 1등이지만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DNA가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GE는 끊임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시장을 바꿨고,설령 추격자가 없어도 시장 성장이 예상보다 더디면 다양한 고객지원을 통해 시장을 키워가는 공격적인 전략을 썼다.

KT경제경영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1등을 따라잡은 2등의 공통점은 '게임의 룰을 바꿨다'는 데 있다. 2등은 기존 게임의 룰로는 판세를 뒤집기 힘든 만큼 '나'를 버리고 모든 것을 바꾸는 전략적 전환과 과감한 도전을 통해 성공을 일궜다. 스마트 신화의 주인공 애플이 걸어온 길과 일치한다.

코카콜라에 밀려 만년 2위에 머물던 펩시는 다양한 인수 · 합병(M&A)을 통해 주스와 스포츠음료 등 고수익 시장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며 탄산음료 기업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매출에서 코카콜라를 뛰어넘었다. P&G는 '더 저렴하고(cheap) 더 간편한(simple) 더 편리하게(convenient)' 이용할 수 있는 세제와 기저귀,탈취제 제품을 통해 전에 없던 시장을 개척하며 소비재 산업에서 수십년간 1등을 지켜온 유니레버를 제쳤다.

1등 기업엔 있고 2등 기업엔 없는 것으로 △닮고 싶은 최고경영자(CEO)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행복한 직원 △흐름을 놓치지 않는 혁신능력 등이 꼽힌다. 하지만 1등을 눈앞에 둔 잘나가는 2등 기업에서도 이런 요소들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현대차는 10년 전 세계 최대의 미국 시장을 뚫기 위해 누구도 상상하지 않은 '10년 10만마일 품질보증'프로그램을 들고나왔고 빅 메이커로 도약하는 계기를 잡았다. 과감한 도전과 시장 흐름을 꿰뚫는 혁신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공 스토리였다는 평가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