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대기업에 '문어발'을 뻗자
양극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예컨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더 잘해 생길 수도 있고,공부 못하는 학생의 성적이 떨어져 발생할 수도 있다. 다행히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전자다.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대기업들이 내놓은 성적표가 경이롭다. 올해 1분기에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낸 대기업이 한두 곳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2조95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1년 전보다 33% 줄긴 했지만 미국 애플의 독주로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낸 실적치고는 놀랍다. 현대자동차도 1분기에 1조827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들였다. 정유회사인 SK에너지와 SK종합화학을 자회사로 둔 SK이노베이션의 영업이익은 1조1933억원이다. 한 분기에 1조원 이상 이익을 내는 기업들이 올해 더 생길 것이라는 게 증권가 안팎의 전망이다.

선두의 질주로 생긴 양극화는 그 성과가 아래로 흘러가도록 해서 좁혀야 한다. 대기업의 성장 과실이 중소기업과 국민 전체에게 돌아가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청와대 직속 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오는 8월께 선정한다. 대기업 참여를 금지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면 대기업이 갖고 있는 돈도 흘러들어가지 않는다.

수도권에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면 지방으로 돈이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시장과 인력,교육과 문화 시설을 잘 갖춘 수도권을 여전히 선호한다. 수도권이 아니라면 차라리 해외로 가겠다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인들은 수도권에서 첨단업종 공장 설립을 완화하는 조치(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법 시행규칙 개정)에 제동을 걸었다. 동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됐으니 첨단기업들이라도 지방으로 가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주장이 일부 대기업들에는 국내 투자를 포기하게끔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진입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은 지난해 11월 도입됐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국내에서 더 이상 장사하기 어려워졌다. 이마트는 2014년까지 중국에 30여개 점포를 새로 열겠다고 한다. 롯데마트도 올 한 해만 해외에 20여개 점포를 늘릴 계획이다. 국내로 흘러들어야 할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부동산 규제가 엄격하다보니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고서도 부동산은 거의 쳐다보지 않는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세금 때문에 고가주택이나 다주택 보유를 기피한다. 부자들이 외면하는 시장이 좋을 리 없다.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은 갖고 있는 집을 처분하기 어렵다. 건설회사들이 내놓는 주택도 잘 팔리지 않는다.

수출시장과 내수시장의 단절,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단절,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단절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고착화시키는 원인이다. 국민경제가 선순환하지 않으면 양극화는 좁혀지기 어렵다. 요즘처럼 대기업들이 눈부시게 성장하는 때일수록 특히 그렇다. 국민경제 곳곳에서 대기업들이 곳간에 쌓아둔 돈을 빨아들일 수 있도록 '문어발'을 뻗어야 한다.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잘라놓은 혈관들을 다시 이어야 한다. 기업 규제를 과감히 풀어 시장친화적인 국민경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대기업의 투자를 늘리고 양극화도 줄이는 진정한 동반성장이다.

현승윤 경제부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