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의 화양계곡에 있는 만동묘(萬東廟)는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보내준 명나라 신종(神宗)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崇禎帝)를 제사 지내기 위해 숙종 29년(1703년)에 세운 사당이다. 묘호 만동은 황하가 만 굽이를 꺾여 흘러도 동해로 들어가고 만다는 대명(大明) 황제에의 간절한 충절을 호소한 것이다.

1636년 조선은 명을 섬기고자 청(淸)에 거역하다가 강산과 백성이 도륙나는 병자호란을 겪었다. 그러나 그때 이미 명나라는 10년 전 일어난 이자성의 농민반란으로 그저 망할 운명이었다. 명 황제들은 조선이 생각하는 그런 성군(聖君)이 아니었다. 신종은 30년간 한번도 조정에 나와 정사를 돌본 일이 없었다는 무책임 극치의 황제였다. 숭정제는 이자성이 자금성에 돌입할 때 궁내에 백은 3700만냥,황금 150만냥이 있었지만 은자 100만냥을 아껴 베이징에 근왕병을 불러오지 못한 기막힌 수전노였다.

결국 1644년 숭정제는 대들보에 목을 매 죽었고 그것으로 중국에서 명을 섬기는 일은 끝났다. 그런데 그 60년 뒤 조선 선비들이 조선 땅에 명제 봉사(奉祀)를 하겠다고 사당을 지었다. 만동묘 유생들의 무소불위 위세와 민폐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 지식인들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그 시문 비문에 숭정의 연호를 썼고 조선 땅은 언제까지나 '대명천지(大明天地)'였다. 결국 이 극심한 조선의 모화주의와 무지가 망국과 일제 침탈을 불러온 것 아닌가.

작금 우리 사회에 부는 복지주의 열풍은 거의 종교적 수준이라 할 만하다. 불과 3년 전 새 정부 출범 시 풍미하던 성장과 고용,일류 기업,선진국 진입 등의 논제는 갑자기 사라졌다. 정부 언론 학계 어디서나 복지와 사회적 정의에 대한 담론만 만발하다. 복지는 물론 좋은 일이고 국가의 책무이지만 그 기회비용에 대한 논의에는 모두 귀를 막은 처지다. 이 시대 어느 사회가 이렇게 복지 숭상에 빠지는지 과거 숭명(崇明) 사대주의에 빠졌던 우리 민족성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복지주의는 왕년 선진국들이 키운 이념이지만 오늘날 이 복지국가들은 그 피치 못할 운명을 목도할 뿐이다. 그리스 스페인 등 이른바 PIIGS(남유럽 5개국) 국가들은 재정파탄,국가파산의 위기와 끝없는 구제금융의 수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유럽은 평균 실업률 10%대,청년실업률 20%대,늙음과 빚이 가득 차고 성장이 고갈된 땅으로 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200%,턱없이 돈과 복지를 살포하던 일본은 금년 재정 충당을 위해 정부세수(40조9000억엔)보다 더 많은 국채(44조3000억엔)를 발행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유럽의 복지사회 모델은 어디에서나 '정리 중'이다. 영국은 극렬한 폭동사태에도 불구하고 대학등록금을 3배로 올리고 프랑스는 연금개혁을 단행했다.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은 부의 국외 탈출과 경제 침체를 견디지 못하고 복지 삭감에 병행해 평균 60%의 소득세율을 30%로 끌어내리고 상속세,부유세를 없애는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복지사회 신앙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국민은 이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으며 따라서 포퓰리스트 정치세력의 퇴조가 불가피한 추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선진국이 발을 빼려는 복지세계의 늪에 기어코 몸을 던지려는 형국이다.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무상복지,70%복지,맞춤형 복지 등 퍼주기 향연만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런 과잉복지가 가져올 세금 증대,저성장과 고용감퇴,복지선진국의 참혹한 경험,작은 정부와 경제성장이 미래에 더 좋은 일자리와 복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시장주의자의 이야기들은 복지전도사들의 소음에 묻힐 뿐이다. 이 상황이 조선시대 모화사상처럼 지속된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운명도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영봉 < 세종대 경제학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