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해 초 경영일선에 복귀한 후 위기경영을 강조해 왔다. 올초 열린 신년하례회에서도 이 회장은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10년 내 대부분 사라진다"며 임직원들에게 "생각의 틀을 바꾸자"고 주문했다.

◆사상 최대 투자…43조원

삼성은 이 회장이 위기와 혁신을 강조한 지 이틀 만에 투자와 고용계획을 내놨다. 통상 매년 3월께 투자와 고용계획을 내놓았던 데 비해 의사결정이 한층 빨라진 셈이다. 삼성은 올해 사상 최대인 43조1000억원을 투자한다. 지난해 36조5000억원보다 18%(6조6000억원)늘어난 금액이다. 고용인원도 총 2만5000명으로 사상 최대다.

투자내역을 보면 삼성전자의 해외법인 증자와 삼성물산의 해외자원 확보 등을 위한 지분 투자용으로 1조1000억원을 쓰기로 했다. 연구 · 개발(R&D)엔 지난해(10조6000억원)보다 14% 늘어난 12조1000억원을 투입해 의료기기 태양광사업 등을 위한 원천기술 확보에도 힘을 쏟기로 했다. 이 회장이 강조한 것처럼 '새로운 10년을 여는 첫 해'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삼성 각 계열사가 글로벌 산업질서 격변에 주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 회장은 "삼성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며 적극적인 사업제휴와 기업 인수 · 합병(M&A)도 시사했다.

삼성전자는 16일부터 이틀간 수원 삼성디지털시티에서 최지성 부회장과 사장단,임원 등 국내외 400여명의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글로벌 전략협의회를 열었다. 최 부회장은 이자리에서 "글로벌 경제성장 둔화와 급속한 전자산업 패러다임 변화(소프트웨어 · 솔루션 등)로 인해 새로운 역량 확보와 혁신이 요구된다"며 근원적 차별화를 통한 시장리더십 강화,미래 경쟁우위 역량 · 체제 확보,리스크경영 체질화를 강조했다.

◆삼성의 빨라지는 행보

삼성 계열사 중 가장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는 곳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등에 12조원을 투자한 데 이어 올해는 10조3000억원을 반도체 사업분야에 투자하기로 했다. LCD(액정표시장치) 분야는 지난해보다 1조원 늘어난 5조4000억원을 집행하기로 했다.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TV 시장으로 변신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해 LCD 생산라인을 현지에 건설하는 비용이 대폭 책정됐다. 중국 생산기지 건설엔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 사장이 직접 중국을 오가며 현안을 점검할 예정이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도 올해 사상 최대 투자를 집행한다. 삼성전자의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S에 쓰인 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분야에 지난해의 5배 규모인 5조4000억원을 쓸 예정이다. SMD는 올해 대규모 투자를 통해 공급을 늘리고 제품을 TV 제품용까지로 다양화해 스마트폰 시장에 이어 태블릿PC,TV 등까지 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삼성LED 역시 올해 7000억원을 투자한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LED(발광다이오드) 조명 시장에 뛰어든 삼성LED는 조명시장에서의 입지를 올해 확고히 다져나가는 데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삼성은 각 계열사들이 사상 최대 투자를 이어감에 따라 고용도 이에 걸맞은 수준으로 높여잡았다. 삼성은 올해 새롭게 채용하는 직원 2만5000명 가운데 1만1000명을 기능직군으로 배정했다. 삼성은 지난해 기능직 인력을 1만명 선발했다.

대졸 신입사원 선발 규모도 지난해보다 1000명 늘려 잡은 9000명으로 책정했다. 신규 채용하는 인력들은 신사업인 의료기기와 태양광 바이오 등에 투입된다. 경력직 직원들도 5000명 선발한다. 삼성은 이 밖에 대학생 인턴 4000명을 뽑기로 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