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중심축이 이동하고 달러화가 약세를 띄면서 미국 이외의 국가들 가운데 이른바 탈달러화 조짐이 빨라지고 있다. 최근 전개되는 제2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조짐은 크게 지역 블럭별로 공동통화를 도입하려는 움직임과 범세계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중심 통화를 도입하는 논의로 양분화되고 있다. 특히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지역 블럭별 공동통화의 도입 이슈는 달러화 약세에 따른 대안 중심통화 논의와 맞물려 전 지역블럭으로 확산 중이다. 비록 유료화가 시련을 겪고 있긴 해도 비교적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 지역공동통화 도입논의를 촉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걸프지역 6개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협의회(GCC : Gulf Cooperation Council)는 단일통화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GCC 통화위원회 본부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두고, 걸프통화동맹이 출범하면 곧바로 걸프중앙은행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중남미 국가들은 무역거래 결제과정에서 발생하는 환 손실을 줄이기 위해 역내 교역에서 달러화 대신 자국통화 활용을 확대할 움직임이다. 브라질과 이르헨티나는 무역결제시 자국통화를 사용 중이며, 중남미 9개 좌파국가 모임인 'ALBA(미주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도 권역 내 무역결제 수단으로 달러화 대신 수크레(지역 단일결제시스템)를 결제하는데 합의했다. 아시아에서는 금융위기 재발방지를 위해 단일통화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본 세계평화연구소(IIPS)는 2030년대에 아시아 공동통화를 도입해 달러화, 유로화와 함께 3극화된 국제금융시스템 창설을 제안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중국도 한국과 중국, 일본간의 '아시아 3(A3)' 통화를 제안해 주목을 끌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권역별로 공동통화 창설 움직임이 활발하다. 서부 5개국은 공동통화(ECO)를 구상, 남아프리카 개발공동체는 2018년까지 단일통화를 창설할 계획이다. 남아프리카 중앙은행도 2025년까지 아프리카 전체를 포괄하는 통화동맹 창설을 주장하고 있다. 지역 공동통화를 도입하려는 노력과 함께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단일통화 도입 움직임도 활발하다. 2009년 3월에 중국이 국제통화기금의 준비통화인 특별인출권(SDR)을 중심통화로 삼자고 한 제안에 글로벌 중심통화 논쟁은 지난해 8월부터 불붙은 글로벌 환율전쟁 이래 더욱 거세다. 금융위기로 잠시 주춤거리긴 했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미주경제권,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경제권 그리고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경제권 등 3대 광역경제권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만들어지는 21C 세계경제질서가 다시 제자리를 찾고 있다. 주목할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럽과 미주경제권 간에는 북대서양 자유무역지대로, 아시아와 유럽경제권 간에는 아시아-유럽 정상회의로, 아시아와 미주경제권 간에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의체로 연결되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외형상 두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지역블럭별 공동통화 도입노력과 글로벌 단일통화 창설 움직임이 결합되면서 2010년대 국제통화질서는 미국 달러화와 유로화, 아시아 단일통화를 축으로 하는 3극 통화체제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3개 통화간의 움직임이 일정한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목표환율제가 도입되면 바로 세계단일통화가 창설되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프랑스를 주축으로 세계단일통화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테라(Terra)와 달러화의 사용범위를 넓히는 달러라이제이션, 유로화 도입을 모델로 한 글로벌 유로화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가운데 유로화의 창시자인 리태어 벨기에 루벵대 교수가 제안한 '테라'가 주목받고 있다. 현재 사용 중인 통화를 새로운 중심통화로 하는 것은 기존의 중심통화국과의 주도권 싸움과 결부되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중심통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추세로 볼 때, 빠른 시일 내에는 쉽지 않더라도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2020년대에 들어서는 달러화를 대신할 새로운 기축통화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과 주요 수출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환율 전쟁은 미국 금리가 언제 인상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미국으로서는 '강한 달러'로 돌아서려면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으나 당분간 인상되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올해도 양적완화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경상수지적자도 늘고 있어 저금리 정책을 통한 달러약세 정책은 계속 추진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특정통화가 지역공동통화 혹은 새로운 중심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화폐의 본래적 기능과 지역 혹은 범세계 중심통화로서의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화폐가 가져야 할 거래 단위, 가치저장 기능, 회계단위 등의 본래적 기능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거래적, 예비적, 투기적 동기 등 목적을 달성해야 해당 지역,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통화로 정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특정국 국민 이외에도 같은 지역 블록 혹은 전세계가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역 혹은 다자 기능도 함께 충족해야 한다. 이런 요건을 갖춘 새로운 중심통화가 정착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유로화가 도입되기까지는 20세기 초 자유사상가들이 첫 통합을 구상한 시점부터 따진다면 100년 이상이 소요됐다. 현재 유로화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제도로 정착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글로벌 환율전쟁과 제2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조짐에 따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상당수준의 달러 약세 폭과 새로운 중심통화를 동시에 인정하는 '新플라자 체제'가 올 것인가가 주된 관심사이다. 결론은, 플라자 체제가 다시 온다 하더라도 명시적인 합의 형태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는 견해다. 1980년대 중반과 달리 각국 간 경기회복세의 차로 유럽, 일본 등은 더 이상의 달러화 약세를 용인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또 미국의 경상수지적자 내용도 많이 변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일본과의 무역불균형으로 엔화를 중심으로 한 달러화 약세 유도가 비교적 쉬었으나, 현재 미국의 경상수지적자의 50% 정도를 중국이 제공하고 있고 갈수록 이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라자 체제가 다시 올 경우 명시적이라기 보다는 묵시적으로,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는 중심통화도 중국의 위안화에 초점이 맞춰지는 수정된 형태가 될 것으로 본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경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아 온 미국이 기득권을 양보하고, 오마바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위안화 절상을 주장해 왔던 것도 이 같은 현실을 인식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