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얼마 전 '희망의 재분배'란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지난 400년간 인류 계몽과 기술적 진보를 주도해 온 서구의 상대적 우위와 그에 따른 '낙관주의'가 신흥국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서구 선진국의 영향력 위축과 신흥국의 부상은 지구촌에서 가장 뚜렷한 변화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중국과 인도가 9~10%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과열을 우려하는 반면,미국과 유럽은 2~3%의 지지부진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의 '뇌관'으로 지목되는 스페인은 젊은층의 41%가 실업자다. 로이터통신은 선진국들의 재정적자 축소를 위한 긴축행보가 본격화하면서 내년도 '잔치(신흥국)'와 '기근(선진국)'이 공존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각국 국민들의 나라경제에 대한 인식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서구 발전의 동력이 됐던 '꿈'과 '희망'도 신흥국으로 이전되고 있다며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예로 들었다. 이 조사에서 중국은 91%,브라질은 62%,인도는 57%가 '국내경제 상황이 좋다'고 응답했다. 반면 미국은 24%,영국은 20%,프랑스는 13%만 같은 대답을 했다. 정부가 경제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는 응답도 중국(91%),인도(85%),브라질(76%)이 미국(48%),영국(45%),프랑스(41%)보다 훨씬 높았다.

한국은 어떨까. 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도는 18%에 불과했다. 그나마 지난해 조사대상 22개국 중 최저였던 5%보다는 높아진 것이다. 정부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25%뿐이었다. 내년에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전망은 21%로 전 세계 평균(30%)보다 낮았다.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은 6.1%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20개국(G20) 중에선 중국 인도 브라질 터키에 이어 다섯번째로 높다.

그런데도 국민들의 정서는 선진국만큼이나 위축돼 있다. 경제주체들 사이에 낙관론이 확산돼야 투자가 늘고 소비도 활발해진다. 아직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한 우리 경제가 새해 보충해야 할 '비타민'은 신흥국들의 희망 에너지가 아닐까 싶다.

박성완 국제부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