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의 스마트TV 출시를 앞두고 국내 방송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스마트TV는 방송 콘텐츠의 유통 패러다임을 뒤흔들어 국가 간 경계를 무너뜨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에 안주하던 방송업계에 위기감이 팽배한 이유다. 자칫 시장 주도권을 애플이나 구글에 통째로 내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 응용프로그램)처럼 국내 방송 콘텐츠의 글로벌 시장 진출이 쉬워져 글로벌 방송 콘텐츠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낙관론도 나온다. 스마트TV는 국내 방송업계에 위기이자 기회인 셈이다.

◆콘텐츠 국경이 사라진다

스마트TV가 파괴력을 가지는 이유는 콘텐츠에 있다. 애플 아이폰이 전 세계적으로 4000만대 이상 팔려나간 것은 25만개에 이르는 애플리케이션 덕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이폰에서 구동되는 앱 시장을 애플이 선점하면서 글로벌 휴대폰 메이커로 부상했다는 지적이다.

스마트TV도 마찬가지다. 애플이 앱스토어를 중심으로 아이폰(스마트폰)-아이패드(태블릿PC)-아이TV(스마트TV)로 이어지는 콘텐츠 사슬구조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스마트TV는 안방에 있는 TV로 앱스토어에 있는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마트폰보다 파괴력이 더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물론 전 세계 방송콘텐츠를 스마트TV를 통해 안방에서 언제든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칸막이가 쳐져 있는 방송의 국가 간 경계가 단번에 허물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최선규 명지대 교수는 "스마트TV는 기존 방송서비스 환경을 무너뜨리고 글로벌 콘텐츠 경쟁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방송시장 격변 예고

전문가들은 스마트TV가 방송시장을 당장 바꿔놓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TV 교체주기가 5~7년에 이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2년 말 지상파방송의 송수신 방식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것을 계기로 디지털TV 교체수요가 본격화되면 스마트TV 보급이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스마트TV는 국내 방송채널사업자(PP)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매출액이 1000억원을 넘는 PP가 16곳(2008년 기준)에 불과할 정도로 영세한 탓이다. 해외의 질 좋은 콘텐츠가 밀려들면 더 이상 설자리가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박승권 한양대 교수는 "스마트TV의 등장으로 중소 PP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케이블TV,위성방송,인터넷TV(IPTV) 등 유료방송사업자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스마트TV는 'PC-휴대폰-TV'를 잇는 3스크린 서비스의 본격화를 가져올 단초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스마트TV로 보던 영화나 드라마를 이동 중에는 스마트폰으로 보고 사무실 등에서는 PC로 시청하게 되면 케이블TV 등 유료방송 시청자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최 교수는 "스마트TV로 영상전화나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다보면 TV를 시청하는 절대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방송광고 단가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TV는 위기이자 기회

방송업계는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케이블TV업체 CJ헬로비전은 최근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만 연결하면 PC로 케이블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티빙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스마트폰 등으로 케이블방송을 볼 수 있는 모바일 티빙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스마트TV 등에 맞서 가입자 이탈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에서다. KT,SK브로드밴드,LG U+(유플러스) 등 IPTV사업자들도 앱스토어 같은 오픈IPTV 장터를 만들어 방송 콘텐츠 확보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스마트TV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 국내 방송업계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는 "스마트TV 전용 애플리케이션센터를 만드는 등 국내 방송업계가 선제적으로 대응하면 시청자들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국내 PP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데도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