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자동차로 9번 아우토반을 타고 라이프치히를 향해 남쪽으로 1시간여를 달리면 엘베강을 만나게 된다. 이곳부터 주변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울창한 숲 대신 지평선 너머까지 유채꽃밭이 펼쳐진다. 바이오디젤 생산을 위한 유채꽃 화훼단지다. 유채꽃밭 사이에는 거대한 풍력발전기 수백기가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다시 1시간여를 달리면 '솔라밸리'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작센안할트 등 독일 남동부 3개주에 걸쳐있는 유럽 최대의 태양광 클러스터다. 27개 태양광 업체와 4개 대학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전 세계 태양전지의 15%가 생산된다.

한국을 비롯해 녹색산업 분야 주요 경쟁국들은 솔라밸리를 집중적으로 벤치마킹하며 태양광 산업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획을 짤 정도다.

하지만 정작 독일의 생각은 다르다. 동독과 베를린 지역의 투자유치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출연기관 베를린파트너스의 롤프 셀링거 국장은 "이제 솔라밸리는 더 이상 독일의 환경산업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잘라말했다.

통일 직후인 1991년 재생법을 통과시키고 신재생에너지 고정가격구매 제도를 세계 최초로 도입하는 등 태양광 시장을 열었던 독일은 이제 태양전지 저가경쟁이 가속화되자 정부 지원액을 줄이고 있다. 대신 해상풍력,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CCS),지열발전,바이오에너지 등의 영역에서 상용화를 발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등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들이 추격해오면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으로 또 다시 앞서 치고 나간다는 얘기다. 시장을 멀리보는 눈과 이를 구동할 수 있는 기술력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태양광에서 풍력으로

독일 정부가 지난 2월23일 태양광 사업자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는 내용의 감축정책안을 내놓자 독일 산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연 8%의 고성장을 이어가면서 차세대 핵심 산업 분야로 자리잡은 녹색산업을 위축시키는 조치라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이 정책을 철회할 생각이 전혀없다. 오히려 건물 지붕의 태양광 시설에 대한 보조금은 16%,일반 부지의 태양광 시설에 대한 보조금은 15%를 각각 삭감했다.

이 정책이 실행된 지 보름여 만인 지난달 14일 라이너 브뤼더레 경제장관과 노버르트 뢰트겐 환경장관은 공동으로 CCS법 초안을 발표했다. 브뤼더레 장관은 "향후 10년간 폐기되어야 하는 이산화탄소는 수십억t에 달한다"며 "독일은 이 핵심기술 분야(CCS)를 빠르게 발전시켜 새로운 수출산업으로 육성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조업 강점 살려

현재 풍력부문에서 독일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70%(설치 기준)를 웃돈다. 지난해 이 분야에서 내수 10억유로,수출 51억유로의 매출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태양광부문에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줬지만 정작 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에서는 독일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니코 패스테프스키 프라운호퍼 연구소 연구원은 "풍력발전기 타워 제조나 지반 공사는 누구나 할 수 있다"며 "하지만 독일이 주력하고 있는 기어와 블레이드 등 핵심장비 부품은 매우 높은 기술적 수준을 요구하고 그만큼 가격이 비싸다"고 설명했다. 풍력산업보다 10배 이상의 첨단 기술을 요한다는 해상풍력 분야에서도 독일은 지난해 5월 북해에 알파벤투스 단지를 조성하는 등 이미 시장을 선점한 상태다. CCS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11년 전부터 향후 100조원대로 추산되는 이 시장을 주목해 공격적인 R&D 투자를 지속해왔다.

제조업의 강점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을 선점한다는 독일의 수출 전략은 차세대 산업인 녹색산업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베를린 · 드레스덴=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