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주가연계증권(ELS)을 둘러싼 증권사와 가입자 간 법적 공방에서 처음으로 투자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ELS 시세 조작과 관련된 분쟁이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됐다. 이번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ELS 관련 소송의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과거 시세 조작 의혹이 제기된 ELS에 대한 민사소송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인기 투자상품으로 급성장한 ELS 시장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기 후에도 소급 적용 가능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가 1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소송은 지난해 8월 정모씨 등 투자자 2명이 대우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2억7000만원 규모의 중도 상환금 청구건이다. 원고 측은 "대우증권이 만기일 ELS의 기초자산인 삼성SDI 주식을 대규모로 매도해 고의로 가격을 떨어뜨려 결국 손실을 보게 했다"며 상품 가입 시 약정한 수익금을 추가로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 소송은 작년 10월 제기된 1억1000만원 규모의 약정금 청구소송과 동일한 상품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앞서 지난 5월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는 "원고 측이 이미 만기 상환금을 수령한 상태여서 ELS와 관련된 법률관계가 종료돼 중도 상환금 반환을 요청할 권리가 없다"며 증권사 측 손을 들어준 바 있다.

하지만 민사31부는 "ELS의 발행 · 판매에 관한 법률행위에 의해 발생한 의무 중 일부를 피고가 이행했다고 해서 법률행위에 따른 피고의 중도 상환 의무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며 "특히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판단하는 시점은 신의성실에 반하는 행위가 없었더라면 조건이 성취되었으리라고 추산되는 시점"이라고 판시했다. 원고 측 변호를 담당한 나승철 변호사는 "증권사의 시세 조작 여부를 모른 상황에서 만기 상환금을 수령해도 계약상 법률관계가 모두 소멸됐거나 중도 상환금 청구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 게 아니라고 결론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가 떨어뜨려 조기상환 방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증권사의 주식 매도에 고의성이 있음을 인정하는 한편 만기일 헤지 거래에 일정 부분 제동을 걸고 나섰다. 재판부는 "조건 성취 시 매입자들에게 원금에 약정이자를 더한 중도 상환금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므로 판매사는 조건 성취로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라고 정의하고 "대우증권은 기초자산을 대량 매도해 거래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투자자의 정당한 신뢰와 기대를 해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매도 주문은 상환금을 마련하기 위한 정당한 헤지 거래였다"는 대우증권 측의 주장에 대해 "장중 분할 매매 등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ELS의 두 번째 평가일 종가가 결정되기 불과 10분 전에 한꺼번에 대량 매도 주문이 이뤄진 것은 고의 또는 과실로 평가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ELS를 판매한 증권사는 스스로가 개입해 기초자산의 공정한 가격 형성에 부당한 영향을 주는 거래를 해서는 안 될 의무가 있다. 나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만기일 증권사들의 헤지성 주식 매매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고 말했다.

최춘구 대우증권 법무실장은 "지난 5월 승소한 건과 동일한 소송에서 패소판결이 나와 당황스럽지만,판결문 내용을 확인한 후 즉시 항소할 것"이라며 "투자자가 중도상환을 받지 못하는 것이 증권사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적극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진행 중인 ELS 관련 민사소송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월 '한화스마트 ELS 10호' 투자자 2명은 서울중앙지법에 ELS 발행사인 캐나다왕립은행(RBC)을 상대로 32억원 규모의 집단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만기일에 대량 매물이 쏟아지면서 기초자산인 SK 주가가 급락해 원금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3월에는 투자자 26명이 한국투자증권이 발행한 '부자아빠 ELS'에 대해 "발행사 측의 시세 조종과 부정 거래 행위로 손실을 입었다"며 1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