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잔인한 4월… 애국심에 대해 생각한다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장병 46명이 희생된 이번 사고는 '애국심'이란 무엇인지를 생각케 하는 계기다.

천안함 희생자 애도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조국을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의 뜻을 이어받아 애국하는 마음을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인터넷의 사이버 분향소에도 "그대들이 조국을 사랑했듯이 대한민국과 온 국민은 그대들을 사랑합니다" "그대들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또 미안하고 고맙습니다"라는 추모글이 이어지고 있다.

천안함 희생자들은 최일선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 순직했다.

나머지 국민을 대신해 국토 방위에 헌신하다 숨을 거뒀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서 숭고함을 느낀다.

그런 마음은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애국심을 자극한다. "나도 조국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지"라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기쁨과 환희의 순간에도 애국심은 고조된다. 월드컵 올림픽 등이 대표적이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을 외치며 다시 열광할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 국민들 모두 자국 국기를 단 선수들의 경기에 환호하게 된다.

'우리나라 팀이 이겨야 한다'는 데 모든 국민의 의견이 일치하는 탓에 평소 축구에 관심없는 사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목이 터져라 승리를 외치며 애국심이 가져다주는 감동에 흠뻑 젖는다.

애국심의 근대적 개념을 설파한 대표적 사상가인 루소는 애국심의 이런 감동을 '달콤하고 열렬한 감정, 모든 감정 중에서 가장 영웅적인 감정'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조국에 대한 사랑은 애인에 대한 사랑보다 백배나 열광적이고 백배나 희열을 가져다준다"고도 했다.

그러나 애국심은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니다. 시민들은 국가가 자신들을 사랑해 줘야만 국가를 사랑한다.

만약에 어떤 국가가 시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런 국가는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말하자면 민주적인 국가가 아니라면 애국심도 그 근거를 잃고 만다. 왕조 국가나 봉건국가에서 애국심이란 있을 수 없다.

애국심은 따라서 민족주의와도 깊은 연관을 갖는다.

애국심은 놀랍게도 근대 민주주의가 태동하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면서 국가에 대한 의무 · 책임감과 더불어 형성된 감정이요 자기 규율이다.

가뜩이나 '열렬한 감정'인 애국심은 동일한 인종 영토 언어 문화 등을 가진 한 민족으로 이뤄진 국가에선 자칫 맹목적인 열광으로 치달을 수 있다.

또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로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억압할 수 있다.

실제로 독일 사상가 피히테가 주창한 민족에 기반을 둔 애국심은 나치 정권이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앞세워 전쟁을 일으키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그래서 자유의 가치를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만 진정한 애국심은 성립한다.

자유에 바탕을 두지 않은 애국심은 맹목적 열정이며 패권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 억압이 될 수도 있다.

자유는 권리와 의무, 책임과 함께 우리를 성숙한 애국시민으로 만든다.

이 가치를 잊게 될 경우 우리는 국가에 투정이나 부리고, 요구 조건만 내거는 그런 3류 시민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천안함 희생자들에게 머리 숙여 경의를 드린다. 국가란 무엇이며 진정한 애국심이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