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법 개정안이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 정부의 협공에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20일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한국은행에 제한적 금융기관 조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 논의를 무기한 보류하기로 했다.

한은법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체계 개편 차원에서 국회 재정위가 2008년 11월 논의를 시작했고, 우여곡절을 거쳐 1년여만인 작년 12월 재정위를 통과했다.

하지만 금융위, 금감원, 소관 국회 상임위인 정무위는 "한은법은 오히려 현행 금융감독 체계에 혼란을 초래하고 금융기관 부담만 증가시킨다"면서 법개정을 강력히 반대했고 최근 한은 조사권을 제약하는 내용의 금융위 설치법 등 맞불법안을 처리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정은 이날 관련기관과 상임위원장이 참가하는 회의를 소집했으나 합의점이 모아지지 않자 법사위에 계류 중인 한은법 논의를 무기한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재정위는 한은권한 확대를 반대하는 모피아(과거 재무부 출신 관료들을 일컫는 말)가 합심해 한은법을 고사시키려 하고, 당 지도부와 정무위가 정부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강력히 반발했다.

이날 당정회의 참석자 중 한은법을 4월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쪽은 서병수 기획재정위원장과 김중수 한은 총재뿐이었고, 나머지 참석자들은 한은법 개정안에 반대 내지 부정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증현 기재부 장관은 부처간 이견이 있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법사위에 계속 한은법을 계류시켜달라고 요청했고, 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도 윤 장관의 의견에 동의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금융위원장, 금감원장, 정무위원장도 한은법 처리시 금융감독체계에 혼란이 발생한다며 한은법 반대의견을 고수했다.

이에 서 위원장은 브리핑을 통해 "법적 권한이 없는 당정회의가 법안심사 처리방향을 결정한 것은 잘못된 선례이자 상식 밖의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김성식 의원은 "정부기관간 합의를 이루지 못해 재정위가 한은법을 마련했는데 내부의 이견이 있다는 이유로 보류조치를 내린 것은 모순"이라고 밝혔고, 이혜훈 의원도 "한은법 보류는 세계적 금융체계 개편논의에 역행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윤섭 기자 jamin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