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명품 차를 만들겠다는 신념과 노력이 녹아 있습니다. 막 조립을 마친 차에 처음으로 시동을 걸면서 갓 태어난 자식의 얼굴을 보는 것 같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

최근 국내 첫 수제 스포츠카 '스피라(SPIRRA)'를 선보인 김한철 어울림모터스 사장(48)은 13일 경기 광주시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2000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부도 위기 등 갖은 산고를 겪고 10년 만에 나온 작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스피라는 4개 모델이 있으며 2565㏄ 엔진을 차체 중앙에 배치해 운동 성능을 극대화한 미드십 구조를 적용했다. 최고급 EX모델(1억6000만원)은 최고 출력이 500마력에 이르고 최고 속도는 305㎞에 달한다.

그는 "해외 유명 스포츠카인 포르쉐,페라리보다 순간 가속력(시속 100㎞ 도달 시간 3.8초)이 우수하고 가격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전체적인 디자인 완성도에서도 뒤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엔진 등 핵심 부품은 외부에서 구입한 뒤 튜닝을 통해 고속 주행에 적합하도록 손본 데다 차체 외장으로 카본 소재를 적용해 경량화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1200여개 부품은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뒤 아웃소싱을 통해 제작한다.

김 사장에게 자동차는 인생의 전부라 할 만하다. 중 · 고교 시절부터 수업시간에도 노트에 자동차를 스케치할 정도로 자동차에 심취했던 그는 단국대 응용미술학과 1학년을 마치고 해외로 유학,이탈리아 국립미술대와 토리노의 SDAD(대학원 과정)에서 디자인 및 설계를 공부했다. 수제차 개발의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1988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 사장은 쌍용자동차 무쏘개발팀에서 외관 디자인 등을 맡았다. 이때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팀에서 내부 디자인 등을 담당하던 부인 최지선 사장(46)을 만났다. 김 사장은 1990년 기아차 연구소로 옮겼다가 1994년 부인과 함께 '프로토(PROTO)모터스'를 세워 자동차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는 "해외에는 코닉세그(스웨덴),베르토네 · 피닌파리나(이탈리아) 등 소량 생산 위주의 수제 자동차회사인 카로체리아(Carrozzeria)가 많다"며 "대부분 50~100년 역사를 지닌 이런 회사를 보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제 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프로토모터스에서 현대 기아 대우 쌍용자동차 및 해외 업체로부터 30~40여건의 연구 용역을 수행하면서 소규모 인원으로 자동차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력을 쌓았다. 김 사장은 당시 기존 차를 리무진으로 개조해 청와대(의전용)와 국내 모 대그룹 회장에게 공급하기도 했다.

그는 "수제차를 개발하면서 외환위기 때 부도의 고비를 겪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며 "하지만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밤을 새우며 스피라 디자인 작업에 나선 아내의 힘이 컸다"고 말했다. 현재 김 사장은 해외 등 대외 업무를,최 사장은 연구 · 개발 및 생산을 총괄하고 있다. 10여년 한솥밥을 먹은 회사 직원들은 김 사장 부부를 '수제 명차를 만드는 디자이너 커플'로 부른다.

2007년 프로토모터스를 합병한 어울림모터스는 국내 여섯번째 자동차회사로 연간 300대 생산 능력을 갖고 있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30여대를 주문받았으며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러시아 지역 바이어들과도 수출계약을 맺었다.

그는 "수제차는 일일이 손으로 조립해 만드는 특성상 생산 공정이 복잡하고 원가도 많이 들지만 '나만의 멋'을 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며 "스피라 개발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회사를 해외 유명 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한국의 '카로체리아'로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김후진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