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삼성 사장단회의가 열린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이 도요타 사태의 시사점을 중심으로 강의에 나섰다. 정 소장은 도요타 리콜 사태의 본질을 "품질의 위기가 신뢰의 위기로 확산되고 이는 곧 경영의 위기로 비화된 것"이라고 규명했다.

삼성 계열사 사장들은 강의를 듣고 "역시 문제는 품질"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삼성 관계자는 "국내외 공장에서 검증을 거쳐 100% 품질 보장이 안되면 양산을 못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사장단회의 브리핑이 끝난 뒤 "역시 삼성"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두 가지 면에서 그랬다.

우선 도요타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위기의 근원을 짚어내는 모습이 삼성다웠다. 위기경영은 삼성이 또 다른 비상을 이끌어내는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 반면 품질의 문제를 하드웨어만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도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날 회의에서 거론된 휴대폰이 대표적이다. 삼성은 휴대폰의 품질점검 사항으로 '배터리폭발가능성,전자파 방출량,유해물질 함유 여부'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한다. 삼성은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제조업체로 성장해 하드웨어 품질만큼은 신뢰받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품질의 영역에 소프트웨어를 집어넣기 시작했다는 게 문제다. 소프트웨어 불량은 문제를 파악하기 어렵고 수리도 제대로 안 된다. 현재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용자의 불만은 각종 블로그와 트위터에 넘쳐난다. 삼성가(家)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이날 트위터를 통해 "요즘 아이폰 능력에 감탄하고 있는데 그것을 이기는 솔루션이 우리나라에서 속히 나오길 바란다. 그런데 솔루션엔 관심없고 기계 몇 대 파느냐에만 관심이 많다"고 꼬집기도 했다.

1995년 이건희 회장은 휴대폰 15만대를 수거해 화형식을 했다. 삼성 휴대폰이 세계적 품질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 계기였다. 이 회장이 최근 복귀일성으로 던진 '삼성의 위기'도 어쩌면 하드웨어적 사고방식의 위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회장은 간헐적이고 부분적으로 제기되는 위기요인들을 모아뒀다가 한번에 터뜨리는 파괴의 달인이다. 그가 어느 날 중대 혁신을 들고 나오는 날,현 사장단에서 살아남는 이는 몇이나 될까.

김용준 산업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