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BizⓝCEO 기획특별판 입니다 >


선명한 하프시코드(쳄발로 · 줄을 튕겨 연주하는 건반악기)와 부드러운 바이올린 선율,웅장한 관악기가 함께 어우러지면 청중은 '소리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절묘한 선곡에 객석에서는 감탄사를 연발하고 박수 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오케스트라(Orchestra) 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2000년대로 넘어올 즈음 미국의 권위 있는 한 일간지에서는 인류의 10대 발명품 중 하나로 오케스트라를 뽑은 적이 있다.

훌륭한 지휘자의 능력은 청중의 열광적인 반응으로 확인된다. 기업경영도 오케스트라와 비슷하다. 가장 아름다운 화음을 창조하는 지름길은 '청중과의 교감'이다. 지휘자가 경영자라면 청중은 고객이다. 소비자의 만족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는 연주법은 곧 '교감 마케팅'에서 기인한다.

고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교감 마케팅이 불황을 이겨내는 또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객과 적극적으로 교감하고 이들을 통해 급변하는 트렌드를 감지해야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마케팅의 여러 측면 중 유통채널을 뚫는 판촉 활동에만 열심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비슷한 제품을 싸게 공급하겠다고 하면 당장은 잘 팔리겠지만,고객들에게 자신들의 제품만이 갖고 있는 진정한 '가치'를 전달하고 교감하지 못하면 오래 가기 힘들다.

일본 자동차가 꼼꼼하게 만들어져 '잔고장이 없는 자동차'라는 가치로,스웨덴의 볼보가 생명을 지켜주는 '튼튼한 차'라는 이미지로 고객들에게 일종의 '교감'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기업들도 자신들의 브랜드에 담긴 가치를 심어줘야 한다.

자신과 같은 감성이나 개성을 표현하는 상품에 주목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요즘 광고도 고객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감성마케팅을 강화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기능을 중시하던 자동차 광고는 물론,타이어 · 에어컨 광고에도 인간의 감성이 표현되고 있다. 심지어 기계가 인간과 교감하는 줄거리를 담은 광고도 등장했다.

LG전자의 휘센 에어컨 광고엔 사람처럼 말하는 로봇 '휘니'가 등장해 사람과 감성적으로 교감하는 내용을 담았고,르노삼성차의 뉴SM5 광고는 자동차를 '최고의 연기'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배우 모습에 빗대 표현했다. 한국타이어도 배우 장동건과 신민아를 기용해 '드라이빙 이모션(Driving Emotion)'이란 감성 광고를 내보냈다.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타이어를 부드러운 남성으로,빠른 속도감을 신데렐라 이야기로 연결지었다.

인간의 감성을 표현하는 이 같은 광고가 늘어나는 이유는 소비자에게 더 친근한 제품 이미지를 각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나 '기능' 등의 단어는 대부분 소비자에게 기계적이거나 차가움 등 거리감을 느끼는 이미지를 형성,제품의 친근감에 부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세계는 '생산의 시대' '기술 정보의 시대'를 지나 '감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감성의 시대에는 남 다른 서비스로 고객의 니즈를 만족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 경쟁사의 동향을 파악하고 '고객의 소리'를 실시간으로 경청하는 한편,나아가 고객의 욕구를 제품 개발 및 서비스 개선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크라이슬러의 경영권을 인수한 이탈리아 자동차업체 피아트가 최근 미국에서 마케팅을 펼치고 있지만 기대만큼의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미국 소비자들과 교감을 나누지 못해서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동차 전문 시장조사업체 에드문즈닷컴에 따르면 크라이슬러가 지난 1~2월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한 자동차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4% 급감했다.

물질을 넘어 '교감'이 사회 인프라가 되는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중소기업의 최종 목표 역시 '고객과의 교감'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신재섭 기자 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