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는 취임 전부터 한국은행의 독립성에 관한 소신과 능력에 대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한은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기준금리의 상향 조정이라는 정책 현안이 이 같은 소신과 능력을 테스트하는 대상이 되면서 이미 내정 단계부터 검증이 시작된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 '한국은행의 독립'처럼 당연한 명제로 인식되면서도 개념이나 본질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것도 없다. 독립이라면 도대체 누구로부터의 독립이란 말인가. 또 독립의 실질 내용이 돼야 할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은 어떤 성격의 기능인가. 구체적으로 행정권의 일부인지,국가의 통치기능(넓은 의미의 정부기능)에는 속하나 행정권과는 무관한 즉 입법,행정,사법,헌법재판,선거관리 다음의 제6의 국가 기능인지,국가의 통치기능과는 무관한 별개 기능인지의 문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의문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위의 물음을 중심으로 1997년 금융개혁 과정에 깊이 관여했던 필자의 생각을 밝힌다.

한국은행의 기본기능인 통화신용정책 수립에 관한 권한은 본질상 헌법 66조 4항이 규정하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즉 행정부)의 권한인 행정권의 일부다. 두 번째 해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은은 헌법에 설립근거를 두는 헌법기관이 돼야 한다. 세 번째 해석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어 논외로 한다.

따라서 한은의 중립성을 규정한 한국은행법 제3조의 의미는 한은의 통화신용정책 기능은 대통령이 최종책임자인 행정기능의 일부지만 행정부 내의 다른 기관 예컨대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등으로부터는 독립해 중립적으로 수립하고 자율적으로 집행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한은 독립의 의미와 한계, 즉 중립성을 유지하되 기능의 본질상 관계정부기관과 협의의 당위성,대통령 권한과의 관계 등이 자명해진다.

이렇게 정의한다고 해도 행정권의 일부인 통화신용정책에 관한 권한을 행정부의 구성기관이 아닌 별도 법인인 한국은행이 수행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헌법규정과 행정조직의 기본원리에 비추어 가능한가 라는 주요한 쟁점이 제기된다.

사실 1989년과 1995년의 한은법 개정 논의 시에 이와 같은 문제 제기가 있었기에 1997년 금융개혁 당시에는 중앙은행제도를 전면 재검토하면서 이러한 본질적이고 법률적으로 쟁점이 발생할 소지를 완전히 해소하면서 중앙은행제도의 본래 취지에 적합한 중립적인 중앙은행을 만들려고 한 것이 당시 정부와 한은,금융개혁위원회 책임자가 합의한 당초 구상이었다.

그 구상은 기관으로서의 한국은행보다 시스템으로서의 중앙은행제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구체적으로는 통화신용정책의 결정기관인 금융통화위원회에 독립적인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부여하고 특수법인인 한국은행을 그 집행기관으로 해 중앙은행제도를 구성하게 하되 금융통화위원장이 한은 총재를 겸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였다. 당연히 설치 근거법은 '중앙은행법'으로 해 기존의 '한국은행법'을 대체토록 했다.

그렇지만 이 같은 개혁안은 입법과정에서 우여곡절 끝에 현행의 모습으로 굴절,변질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간 우리 사회가 마치 당연한 듯 기대하는 무한정의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기대수준대로 충족한 총재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던가. 한은 출신 여부를 막론하고 말이다. 이런 결과가 자연인인 역대 총재들의 소신,능력의 문제인지,잘못 설정된 본질과 개념 그리고 잘못 부여된 역할에 의해 역대 총재들이 평가돼 왔기 때문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탁월한 경제전문가인 신임 한은 총재와 그가 이끄는 금통위가 합리적인 의미의 중앙은행의 중립성을 소신 있게 지키고 제대로 평가받는 첫 케이스가 되었으면 한다.

김인호 <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