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학원가의 아이들
●학원 5~6개는 기본 :
강남 아줌마 '최고급 정보통' 끊임없이 새 사교육 시장 수소문
●私교육이 死교육 :
전문가 "무분별한 스펙쌓기 효과 없어" 스펙 좋아도 내신 나쁘면 입학 'NO'
[2010 강남 인사이드] (6) 5세부터 '스펙' 쌓기! IQ높이기ㆍ리더십 특강ㆍ특허등록증…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지하철 2호선 선릉역 인근에 자리한 오씨에이 발명창작학원.박영준 원장이 테이블에 앉은 3명의 초 · 중학생을 상대로 "자전거 도난사고가 많은데 자전거의 어느 부분을 떼서 들고 다니면 도난을 방지할 수 있을까"라고 묻자 한 아이가 "안장이요"라고 답했다. "안장은 무거운데 어떻게 들고 다니냐"고 되묻자 잠시 후 다른 아이가 "가벼운 재질로 바꾸고 접을 수 있게 만들면 돼요"라고 답변했다. 박 원장은 미소를 지으며 "방금 새로운 발명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 학원은 대학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해 학생들의 '스펙'을 쌓아주기 위해 지난해 설립됐다. 박 원장은 "조금 전에 그 학생이 안장 관련 특허를 등록하면 대학 입학이 유리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부가 '사교육 잡기'에 한창이지만 강남 학부모와 학생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교육 시장을 찾아 다니고 있다. 내신이나 수능성적을 높이기 위해 유명 강사가 가르친다는 입시학원을 수소문하는 것은 물론,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한다는 대학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해 각종 '스펙쌓기' 교육에 한창이다.

[2010 강남 인사이드] (6) 5세부터 '스펙' 쌓기! IQ높이기ㆍ리더십 특강ㆍ특허등록증…

◆끝없는 학원 행렬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어느 학원,어느 강사가 좋다는 정보가 최고급 정보로 통한다.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학부모 이모씨(45)는 "학교 어머니회나 교회 모임 등에 상당한 공을 들여야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동네의 한 아이는 아버지가 유명한 의대 교수여서 제자들을 시켜서 과외를 시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반포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4학년)을 두고 있는 주부 이모씨(37)는 "아이가 영어,바이올린 등을 비롯해 8개 학원에 다니고 있다"며 "아이 교육을 챙겨주려고 직장을 그만뒀는데 직장다닐 때보다 더 바쁘다"고 말했다. 물론 사교육 비용은 웬만한 월급쟁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강남에서 9년째 전문 과외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오모씨는 "고액 학원은 과목당 400만원씩 하기도 하고 실력이 월등하다고 소문난 강사라면 월 1000만원씩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유명 학원의 좋은 반은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외고를 지망하는 중3 딸을 둔 이씨(49)는 "딸이 다니는 학원이 토플 120점반과 100점반을 운영하는데 원장이 직접 강의하는 120점반에 들면 외고에 입학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며 "이 때문에 따로 토플 과외를 시킬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노원구에 살다 2년 전 강남구로 옮겨 대치동 휘문고에 다니고 있는 정모군(18)은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도 유명하지만 강남 학생들의 공부 열기는 상상을 초월한다"며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앉아 있는 친구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에 흡수된다"고 말했다.

◆전방위 스펙 쌓기



사교육을 통해 스펙을 쌓으려는 수요도 많다. 강남구 역삼동 신중성어학원의 신인규 대리는 "대학 입학사정관제에 대비,자기소개서에 공부 이력을 적기 위해 특이한 제2외국어를 듣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며 "수능에 나오지도 않는 포르투갈어와 힌디어에 대한 문의전화가 많다"고 전했다.

실제 강남구 도곡동 숙명여고 2학년생인 박모양은 "하루에 3~4개 정도 학원을 다니는데 한 학원에서는 리더십 특강을 듣고 있다"며 "시간이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입시에 유리할지도 모른다는 얘기에 그냥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회장 당선을 위한 교습을 해주는 곳도 있다. 지난 12일 강남구 개포동 양인석지도자교실에서는 양인석 원장이 인근 중학교 전교회장에 출마한 A군(16)에게 웅변 방법과 함께 "3학년은 표가 나뉘기 때문에 1 · 2 학년표가 당락을 결정한다. 연설 직후에 투표하니까 연설이 70~80%를 좌우한다"며 선거 전략까지 지도했다. A군은 "작년에 회장에 뽑혔던 선배가 추천해줘서 오게 됐다"며 "배운대로 유세를 했더니 1학년들 중 참모하겠다는 애들이 제법 생겨났다"고 말했다.

지능지수(IQ)를 높이기 위한 사교육도 성행하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의 큐리어스 영재스쿨은 초등학교 입학 전 아동들을 대상으로 끝말잇기,레고,과학교육 등 전방위 교육을 통해 지능지수 향상만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곳이다. 이곳 김정미 원장은 "IQ 105짜리 5살 남자아이가 찾아왔었는데 1년6개월 정도 교육을 받은 후 134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이대로 좋은가



그러나 무분별한 스펙 쌓기에 대한 '무용론'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강남구 삼성동의 한 고등학교 진학지도 교사는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제를 한다는데 실제로 보면 내신성적으로 잘라버리는 경향이 있다"며 "흔히 말하는 스펙이 좋아도 내신 5등급이면 서울의 모 중위권 대학 자유전공학부 가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스펙쌓기는커녕 학교에서는 면접 준비도 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가 일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균형 잡힌 세계관을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정해주는 교육과 입시 위주의 학교 분위기에 사로잡혀 정상적 사회인으로서 가져야 할 소양을 배양하지 못한다는 것.

5년째 강남에서 전문논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 모 원장은 "강남 아이들은 전반적으로 글쓰기 실력은 괜찮지만 시야가 너무 좁아 제시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과시적 소비와 합리적 소비를 구별하지 못하는가 하면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배려해야 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하기도 한다는 것.

김 원장은 "가끔 학생들이 '왜 능력 없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세금을 많이 내야 하냐'고 묻기도 한다"며 "서울대 지역균형 전형에 대해서도 한번 깊게 생각해보지도 않고 역차별이라고 강변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심은지/남윤선/이유정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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