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양심은 개인의 독단이 아닌 '보편적 양심' 이어야

이용훈 대법원장이 최근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일반적인 상식에 비춰 받아들일 수 없는 기준을 법관의 양심이라고 포장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양심은 공정성과 합리성이 담보가 돼야지, 유별난 법관 개인의 독단을 양심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의 이번 언급은 지난 달 민노당 강기갑 대표와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 선고 등 법관들의 ‘편향 판결’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사법부의 수장이 기준을 제시한 것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사법부 판단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지에는 이 대법원장이 지적한 ‘법관의 양심’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 양심이란 무엇인가

[Focus] 법관이 누구냐에 따라 유·무죄나 형량이 달라진다면?
선한 일을 하면 마음이 편하고 악한 일을 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서 양심(良心·consciousness)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으로 해석한다.

consciousness란 영어 단어는 ‘모두 함께 안다’(con-science)라는 라틴어에서 나왔다.

서로 물어보지 않아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잘 깨닫고 이해하는 공통된 생각, 다시 말해 상식을 일컫는다.

법원의 정의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대법원 판례에서는 ‘어떤 일을 판단함에 있어서 도저히 그렇게 하지 않고는 자신의 전인격적인 가치가 파괴되고 말 것이라는 구체적이고 절박한 심정’을 양심이라고 정의한다.

양심은 오랫동안 철학 윤리학에서 중요한 존재로 여겨져왔다.

독일의 근세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양심은 내적 법정,즉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도덕의 재판소”라고 했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착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한 중국 철학자 맹자는 “양심은 인간의 내면속에 있는 인의(仁義)”라고 표현했다.

근대 시민사회로 옮아가는 과정에서 양심문제는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화두로 제기됐다.

특히 권력의 부도덕하고 폭압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양심은 이를 저항하는 시민운동가들사이에서 주요한 논리로 강조돼왔다.

19세기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양심과 도덕을 국가의 법보다 더 우위의 법으로 놓았다.이런 사상을 자연법 사상이라고 부른다.

그는 국민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시민 정부라 하더라도 그 행위가 인간의 양심에 배치될 경우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시민불복종 운동을 벌여나갔다.

소로는 부정의한 세금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양심에 포함시켰다.

소로 이후 양심의 이름으로 국가로부터 독립한 자신과 자아의 존재를 지키는 것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인도의 무폭력 불복종 운동을 펼친 간디도 소로를 자신의 스승이라고 얘기까지 했다.

이런 성과로 인해 우리 나라의 헌법을 포함한 선진각국의 헌법에서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19조)라고 규정하면서 양심을 인간이 가지는 기본권으로 두고 있다.

⊙ 법관의 양심은 보편적 양심이라야

그러나 인간이 결정한 모든 사안이 양심의 결정이라고 한다면 결국 개인과 사회간 충돌이 일어나고 이에 따른 양심의 충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특히 양심 문제에 대해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사안의 잘잘못을 판단해야하는 법관의 양심이다.

최근 법원은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건과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전교조 교사의 시국선언, 학생들을 빨치산 이념 교육 행사에 참석시킨 교사 등 주요 사안들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여론에서는 법관의 자질문제를 거론했고 사법부가 판결에서 법관 개인의 양심을 근거로 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돼왔다.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양심이 개인의 양심인지, 아니면 법원이라는 기관의 양심인지 구별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학계에서는 법관 개인의 도덕적 주관적 양심이 아니라 법관으로서 객관적인 법조적 양심내지 직업적 양심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만약에 동일한 사건에 대해 한 법관은 유죄를 선고하고 다른 법관은 무죄를 선고한다면 법치국가의 면모가 어떻게 되겠는가.

법관의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달리 판결을 받게 된다면 이는 사법부의 신뢰가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법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의 기틀이 흔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법관으로서의 양심과 인간으로서의 양심의 자유가 충돌하는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시켜야 한다.

바로 이것을 사법부 독립의 원천으로 본다.

이영훈 대법원장이 “상식에 비춰 받아들일 수 없는 기준을 법관의 양심이라고 해선 안된다”라는 발언은 이를 재삼 부각시킨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특히 기관으로서의 양심과 법관 개개인의 독단적 소신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다른 법관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하고 국민의 일반 상식에 부합해야 한다고 제시한 대목을 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개별 판결에 대해서도 집단적인 검토를 거치는 과정을 재판 과정에서 반드시 포함시키고 있다.

특히 의사협회가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무죄 판결에 대해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 자문도 하지 않고 내린 판결”이라고 지적한 것 등이 법원 내부의 반성을 유도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사법부 독립’에서 ‘법원 내부의 반성’으로 옮겨 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 중앙지법은 재정합의부를 신설하고 연륜있는 단독 판사를 보임하면서 개선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다 실질적인 판결의 예방과 대책, 법원내 사조직 척결, 들쭉날쭉한 양형조정들이 선결과제라고 밝히고 있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