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은 논리의 흐름 내안에 있는 주체적 사고의 발현

제시문

[논술 기출문제 풀이] 서울대학교 2010학년도 정시논술 문제 풀이 <3>
조선 후기의 학문과 사상에서 나타난 새로운 경향 중에 대표적인 것은 실학의 발달이었다.

실학은 17,18세기 사회·경제적 변동에 따른 사회 모순의 해결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대두한 학문과 사회 개혁론이다.

실학은 18세기에 가장 활발하였으며,대부분의 실학자는 민생 안정과 부국강병을 목표로 하여 비판적이면서 실증적인 논리로 사회 개혁론을 제시하였다.

-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무릇 노비가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게 하는 법을 한결같이 균등하게 적용해야 한다.

지금의 법에는 공사(公私)의 노비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도록 되어 있으나 노(奴)가 양녀(良女)에게 장가들어 낳은 아이는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게 하니,이 법은 한결같지 않고 오직 천한 신분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마땅히 한 쪽을 따르도록 그 법을 분명히 정하여,노가 양녀에게 장가들어 낳은 아이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도록 하여야 한다.

법의 유래를 구명해보면,우리나라 풍속에서 노비를 부릴 때 학대하고 관용을 베풀지 않으며 마치 우마(牛馬)나 계견(鷄犬)처럼 다루는데,부리기를 이같이 하고 아버지를 따르라고 하면 간사하고 문란한 소송이 이루 헤아릴 수가 없게 될 것이기 때문에 부득이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머니를 따르게 하는 법이 그른 것이 아니라 노비를 세전(世傳)시키는 법이 그른 것이다.

후세에 이르러서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법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어머니가 양녀이면 자식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게 하여 노비로 삼는다. [중략]

살펴보건대,노비라는 명칭은 본디 죄지은 사람을 다스리는 데서 생겨난 것이며,죄인이 아닌데도 노비로 만드는 법은 옛적에는 없었다.

무릇 죄인으로 노비가 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벌은 후손에게까지 미치지 않았는데,하물며 죄가 없는 사람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중략]

조선의 노비법은 죄가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고 오직 그 가계만을 살펴서 영원히 노비로 삼는다.[중략]

조선시대에 들어와 법을 제정할 때 사람을 몰아 노비가 되게 하고 노비 신분에서 빠져 나오는 사람은 없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노비가 점점 많아져 10명에 8,9명을 차지하고,양인(良人)은 점점 적어져 10명에 1,2명을 차지하게 되었다.[중략]

나라에 공민(公民)이 없어지고 모두 사유(私有)로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비 한 사람의 소유권을 둘러싼 소송도 10년을 다투고도 판결이 나지 않는다.[중략]

이러한 폐단과 형세가 극단에 이르러 변통(變通)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당장 변통할 수 있는 방법은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게 하는 법을 그대로 적용하여 한결같이 고루 적용하는 것이다.

양녀 소생이면 양인이 되게 함을 이름이다.[중략]

우리나라에서는 노비법이 오래되고 그것이 풍속을 이루어 사대부들이 모두 노비에 의지하여 집을 유지하는 까닭에 갑자기 개혁하기 어렵다.

반드시 풍속이 점점 변하고 상하 모두 살림이 넉넉해지고 고공(雇工; 머슴)이 점차 늘어난 후에야 노비제를 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노비제를 폐지한다는 것은 갑자기 현재의 노비를 모두 폐지한다는 것이 아니다.

노비 신분을 당대에 그치게 하고 대대로 노비가 되게 하는 법을 폐지하자는 것이다.

- 유형원「반계수록(磻溪隨錄)」,1670년

「예기(禮記)」에 이르기를,군신(君臣)과 상하(上下)는 예가 아니면 그 질서가 정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옛날에는 성인(聖人)이 개물성무(開物成務)의 문채(文彩)를 만들어 귀천(貴賤)을 표시하였으니,소위 황제(黃帝)·요(堯)·순(舜)이 의상(衣裳)을 드리우자 천하가 다스려졌다고 하는 것이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공복(公服)의 문채에 등급이 있고 깃발의 술에도 등급이 있으며 수레에도 등급이 있으며 지붕의 골에도 등급이 있으며 제사에도 등급이 있어서 그 질서가 정연하여 상하의 등급이 명백하였으니,이것이 성인이 세상을 통솔하고 백성을 안정시킨 대권(大權)이다.

우리나라 습속에도 변동이 자못 엄하여 상하가 각각 그 분수를 지켰다.

근세 이후로 작록(爵祿)이 한쪽으로 치우쳐 귀족이 쇠잔하자,호리호맹(豪吏豪?)이 틈을 타서 기세를 부려서 집과 말 치장의 호사스러움과 의복과 음식의 사치스러움이 모두 법도를 넘어,아래가 위를 능멸하고 위는 시들게 되어 등급이 없어졌다.

장차 어찌 사회를 유지 결합하여 그 원기를 북돋아 그 혈맥을 통하게 하겠는가.

귀천을 밝히고 지위의 서열을 구별하는 것은 오늘날의 급무(急務)이다.[중략]

신해년(1731년) 이후로 무릇 사노(私奴)의 양인(良人) 신분 처(妻) 소생은 모두 양인 신분을 따르게 되었다.

그 이후로 상층은 약해지고 하층은 강해져서,기강이 무너지고 백성들의 뜻이 흩어져서 통솔하고 이끌 수 없게 되었다.[중략]

신해년 이후 귀족은 날로 시들어 가고 천민은 날로 횡포해져서 상하의 질서가 문란하여 교령(敎令)이 행해지지 않으니,한번 변란이 일어나면 흙더미가 무너지고 기왓장이 부스러지는 형세를 능히 막지 못할 것이다.

군왕은 이미 멀리 떨어져 있고 수령은 나그네와 같아서,마을 이웃 간에 어리석은 무리를 통솔하고 이끌 방도가 없으면 어찌 어지럽지 않겠으며 또 무엇으로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노비법을 복구하지 않으면 어지러움으로 망하는 것을 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 정약용「목민심서(牧民心書)」,1818년

논제

자신이 19세기 초반의 실학자라고 가상하고,노비제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논설문으로 작성하되,다음 사항을 포함하시오. (1,600 ±100자)


① 노비제에 대한 (나)와 (다) 주장의 비교·설명

② 두 주장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



⊙ 논리적 대화로서의 논술

서울대학교는 정형화된 틀을 유지하지 않고 다양한 논제를 출제해 왔다.

그래서 ‘유형집중탐구’라는 것이 사실 무의미하다.

하지만 서울대 논제의 ‘정형성’을 그래도 굳이 찾자면 ‘개방성’ 내지는 ‘자유재량’을 꼽을 수 있다.

서울대학교는 수험생에게 많은 재량권을 쥐어주고 본인 스스로 논의를 이끌어나가게끔 논제를 출제한다.

이것이 수험생에게 ‘그냥 네가 알아서 쓰라’는 막막한 느낌의 논제로 수용되는지,아니면 ‘네 맘껏 원 없이 쓰라’는 열린 문제로 이해되는지는 각자의 역량에 따라 다를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정형성’이라기보다는 ‘전통’이라고 표현함이 더욱 정확하겠다.

올해에도 이러한 전통이 계승된 논제가 어김없이 출제되었다.

특히 제3문항은 제1문항 및 제2문항에 비해 자유재량(自由裁量) 부여의 특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자신이 19세기 초반의 실학자라고 가상하고,노비제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논설문으로 작성하라”면서,수험생이 마음대로 뛰어 놀 수 있는 1,600자 크기의 마당을 제공해준 것이다.

논제의 요구에 따라 수험생은 ‘노비제’에 관해 자기 의견을 주체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서울대학교 논술시험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은 답안들의 특징은 뚜렷한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문의 논지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느냐 여부도 중요하지만 도전적이며 주체적인 사유태도는 그 이상으로 중요하게 평가된다.

제시문의 입장을 보다 상세하게 서술하는 해설문이 논설문은 결코 아니다.핵심요지가 무엇인지,자신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하지만 주장은 있으나 논거가 약하면 나쁜 글이 된다.

이전 편 해제에서도 강조했듯이 논술의 꽃은 ‘논증’이다.

주장과 그에 대한 논거로 구성된 담론인 논증(argument)은,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타당한 이유 제시가 그 본질이자 생명이다.

그러므로 주장을 내세웠다면 그 합당함을 입증하는 논리적 정당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야 한다.

그래서 논설문에서는 주장보다는 논거가 중요하고(형식적 논증력),또한 논거를 설득력 있게 써 내는 것(실질적 논증력)이 핵심이다.

한 때 허무개그가 유행한 적이 있다. 기이한 행동을 한 인물에게 주변인이 “왜 그랬어?”라고 물으면,“어,그냥”이라고 답변하는 유머였는데,의외로 많은 수험생들이 논술답안에서 그러한 허무개그를 펼친다.

주장만 점철된,“어,그냥”이라는 선문답을 던져놓고는 자신은 논리적 글을 썼다고 흡족해하는 것이다.

논술은 일방적 선언이 아니다.논술로서 의미 있는 답안이 되려면,충분한 근거 위에서 글을 논리적으로 개진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자신의 말을 듣는 진지한 대화상대가 있다 가정하고 생각을 전개하는 것이 편하다.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누군가 “~라고 주장하면/반대하면/설득하면” 어떻게 대응할지 충분히 고려하면 높은 완성도의 답변을 준비할 수 있다.

논설문을 쓴다는 것은,의견이 여러 갈래로 대립할 수 있는 문제에 관해서 치밀한 논증과정을 통해 나의 주장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는 행위다.

탄탄한 논증을 갖춘 답안을 작성하려면 스스로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깨어있어야 한다.

늘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

서울대학교는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자 세밀한 내역을 담은 <논술평가영역 기준표>를 발표했다.

수험생들은 ① 이해·분석력 ② 논증력 ③ 창의력 ④ 표현력의 네 영역에서 골고루 평가된다.

그런데 이 네 영역 중에서도 특히 중점적으로 평가되는 영역은 논증력과 창의력 부문이다.

대개가 교과서에서 출제되는 제시문은 그 수준이 크게 어렵지 않기 때문에 이해·분석력 측면에서 점수 차별화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표현력 역시 필요한 정도의 의사소통능력을 갖추면 된다.

예전 서울대 논술경시대회에서 대상 수상작을 결정할 때 표현력과 사고력이 충돌하자,채점단은 표현의 유려함보다는 강인한 사고력에 손을 들어주었다.

당시 채점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대상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 수상작은 거친 글이다.다른 후보작들과 비교할 때,현란한 비유법도 없고 수사학적 재능이 과시된 곳도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강인한 사고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심사위원들은 자신의 논지를 힘차게 펼쳐 가는 후보자의 용기를,그리고 그 용기를 뒷받침하는 논리적 분석 능력을 높이 샀다.”

그러므로 수험생들은 ‘논증력(근거설정능력/구성조직능력)’과 ‘창의력(심층적 논의전개/다각적 논의전개/독창적 논의전개)’ 영역에서 인상 깊은 답안을 작성할 수 있도록 평소 꾸준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데 누누이 설명한 논증은 그렇다 치고,창의력(서울대 채점기준에 따르면 창의력이 30~40%를 차지)은 도대체 무엇인지 고민하는 학생이 많다.

창의력이라고 하면 뭔가 생경하고 무척 특이한 것으로 지레 짐작하는 경우가 많지만,창의력은 실질적 논증력이 발달한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서울대학교에서도 창의력을 논의 전개에 있어서의 ‘심층성,다각성,독창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결국,논증력과 창의력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인 셈이다.

⊙ 게임의 조건 1 : 당신은 19세기 초의 실학자이다.

‘논설문’으로서 구비해야 할 사항에 관해 길게 떠들었으니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자.

출제자는 논술이라는 이름을 빌려 당신과 지적 게임을 한 판 하자고 제안했다.

게임의 첫 번째 조건은 당신이 ‘조선후기 실학자’라는 것이므로,타임머신에 승차해 시계바늘을 19세기 초로 돌려야 한다.

서울대학교가 수험생을 타임머신에 태워 시간여행 보낸 게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2008학년도 모의문항에서는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당시 조선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논제가 출제된 적이 있다.

하지만 올해 정시에서는 수험생들을 조금 더 멀리 보냈다.

수험생들은 19세기 초반의 실학자가 되어서 논설문을 작성해야 했다.

그런데 19세기 초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기초적 소양을 갖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렵지 않게 당시 상황이 그려질 것이고,혹시나 모른다면 주어진 제시문 (가),(나),(다)가 긴요한 자료가 된다.

19세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표면으로 점차 드러나던 조선사회의 제도적 모순이 더할 나위 없이 극대화된 시기다.

전란이 나라를 휩쓸면서 왕조의 권위는 실추되었고,정부가 민생파탄과 사회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자 기존의 국가질서가 하나 둘 붕괴되기 시작한다.

2008학년도 정시논술 제1문항에서 비교자료로 등장한 바 있던 두 유형의 족보도 사실은 정권의 무능이 초래한 조선후기 혼란상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가문의 부계전승이 뚜렷이 드러나는 형태의 족보는 양대 전란을 거친 후기 조선사회에 정착했다.

이는 단순한 친목의 개념이 아니라,권위를 가진 조직체로서의 가문(clan)이 기형적으로 발달했음을 보여준다.

당대 중앙정부의 무능에 실망한 사람들은 실패한 중앙정부 대신 자신의 방패막이 되어줄 새로운 보호자를 족벌에서 찾은 것이다.

가문을 중심으로 한 공고한 결집은 중앙권력에 대한 위협이 되기 때문에,중앙정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왕조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비대해진 족벌 가문들은 사노비들을 끌어 모은 결과 일반 양민의 수가 대폭 줄면서 계층 양극화 현상이 심각해졌다.

이처럼 중앙권력 및 양천제 신분제도가 체제적 정당성을 상실한 19세기 상황에서,당신은 현실세계에 관한 비판적 인식을 가져야 한다.

현실을 구체적으로 개선하고자 정치적·사회적 문제로 고민하는 당신 눈에는,이기(理氣)라는 개념론에 치중하거나 인간의 내면적 도덕성에 의거해서 도를 구현하자는 형이상학적 성리학은 한심할 만큼 비실제적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칫하면 당신도 도학적 담론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주장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유형원이 점진적 개혁론을 주장했겠는가?

그가 산 시대가 조선후기이기 때문이다.

현재야 모든 국민의 평등을 헌법에서 천명하지만,게임조건에 따라 당신이 위치한 19세기에는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계급이 당연한 신분제 사회였다.

당대에 수용 가능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야 당신의 주장이 추상적 공론(空論)이 되지 않고 합당한 사회공학적 설계가 된다.

19세기 현실에 관한 분석과 노비제에 관한 당신의 대안적 주장이 정합성(整合性)을 띠도록 고민하자.

⊙ 게임의 조건 2 : 논증과정에서 다뤄야 하는 반계 유형원과 다산 정약용의 글

논증과정에서 소화시켜야 하는 제시문 (나)와 (다)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유명한 실학자 유형원(1622-1673)과 정약용(1762- 1836)의 글에서 각기 인용되었다.

이 두 글은 시대를 가로지르는 보편적 문제의식과 논리체계를 담고 있다.

비록 고리타분하다 못해 어색하기까지 한 옛 언어로 기술되었지만 반계와 다산의 고민은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고 국가를 운영하는데 있어 시대를 초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신은 반계와 다산을 이해하고 이들의 동료 실학자로서 고유한 논변을 완성시켜야 한다.

물론,그들의 주장과 논거 중 괜찮은 부분은 비판적으로 수용하면 된다.

관건은 이 둘의 개성을 얼마나 정확하게 개념화하느냐이다.

유형원은 노비제에 관해 제도변혁을 주장하는 ‘바꿈’ 세력이고,정약용은 제도보완을 주장하는 ‘지킴’ 세력이다.

쉽게 표현해 (이 단어는 오남용이 심해 오해의 소지가 있으나) 각각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글이다.

또한 유형원은 ‘제도 그 자체의 내적 모순’을 폐단의 원인으로 파악하고,정약용은 ‘제도 운영의 부실과 기강해이’를 사회혼란의 이유로 지적한다.

이처럼 원인분석이 다르기 때문에 대안모색도 각기 다르다.

유형원은 제도론적 합리주의를 주창하면서,현대식으로 표현할 때 ‘무급노동자’인 노비들을 고공(雇工),즉 유급노동자로 전환하여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자고 주장한다.

또한 자기결정으로 인한 결과귀속이라는 ‘자기책임’ 원리에 입각해 애초 범죄자의 신분인 노비 지위를 후대로 세습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세습형 사회를 탈피하여,개개인의 노력과 법규준수에 기반한 성취형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주장이다.

유형원의 사상은 제도에 의해 올바른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객관주의적 측면이 강조되며,잘못된 제도의 변혁을 촉구하는 개혁 성향을 띠고 있다.

또한 노비인구의 점차적 축소를 통해 국가의 공민(公民)을 증대하고자 하는데,이는 국가재정 안정화를 위한 세수증대와 연결되는 논의이다.

반면,정약용은 제도의 본질을 바로잡자는 보수적 입장이며,제도의 변혁보다는 인적 운용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이 점에서 다산의 견해는 사회자본의 중요성을 논하는 현대의 사회자본론과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다(제2문항과 제3문항이 이 점에서는 통한다.TFP로 대변되는 생산효율성은 사회자본을 포섭하기 때문이다.김구는 경제력 및 군사력에서 문화를 분리하는 이분법적 논리를 전개했지만,사회자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TFP처럼 문화적 요인이 사회 생산성으로 이어지는 점에 주목한다).

설령 제도가 같다 할지라도 사회적 자본,즉 사회가 갖춘 미덕에 따라서 번영의 정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회자본 사상가들과 정약용은 사용언어가 다를 뿐 논지의 맥은 동일하다.

제도적 여건이 동일해도 어떠한 나라는 번영하고 다른 나라는 그러하지 않다.

현대 거의 모든 국가가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와 자본주의라는 경제제도를 따르지만 각 국가의 현상은 천차만별이다.

이 차이는 사회적 자본의 차이로 풀이되며,공동체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현대의 사회자본 사상가들처럼 정약용은 제도의 인적 운용과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주관주의적 입장에 서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제도적 차원의 합리성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인적 운용의 주관적 합리성이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또한 (다)에는 피라미드식 계층구조가 사회의 안정을 가져온다고 생각도 드러나 있다.

헤밍웨이는 살면서 마주한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텅 빈 백지’(a blank sheet of paper)라고 답했다.

글을 쓰는 것,특히 논술답안을 작성하는 것은 힘든 작업이다.

제한된 시간에 자기의 생각을 정돈해 유연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이 단순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술이 통상 생각하는 만큼 어려운 일은 결코 아니다.

논술의 막막함은 글쓰기를 너무 쉽다고 생각해 충분한 대비를 하지 않은 데서 비롯한다.

답안에 담아낼 생각이 어느 날 그냥 거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오는 지적 자극을 흡수해야 주관이 생긴다.

그리고 답안을 쓸 수 있는 ‘기초체력’을 기르려면,평소 간단한 글쓰기라도 틈틈이 해야 한다.

꾸준하게 노력하면 글쓰기의 대가는 반드시 돌아온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