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밴쿠버 2010 동계올림픽' 개막식 축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올림픽은 선수들의 것이다. 경기와 자세를 통해 우리 모두 열망하는 마법을 보여 달라.여러분이 청소년들의 우상임을 기억하라.책임이 따르지 않는 영광은 없다. "

그리고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마법은 일어났다. 이승훈 선수가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서 6분16초95로 같은 종목 세계 기록 보유자인 스벤 크라머(6분14초60,네덜란드)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아시아 선수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메달리스트가 된 게 그것이다.

이승훈 선수의 은메달 획득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일본팀에서조차 축하해줬다고 할 만큼 아시아권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던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에서 메달을 딴 것도 딴 것이지만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꾼 지 불과 7개월 만에 얻어낸 쾌거인 까닭이다.

그는 지난해 4월 쇼트트랙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하얼빈 동계유니버시아드 쇼트트랙 3관왕의 영광 뒤에 찾아온 좌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종목을 전환,한국 신기록을 거듭한 끝에 10월 스피드스케이팅 대표로 뽑혔다.

"어차피 안될 텐데"라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에도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바꾼 선수들이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된 적이 많았던 게 원인이었다. 그는 아예 귀를 막고 달렸다고 털어놨다.

이 선수가 일으킨 마법은 어느날 앞길을 가로막은 거대한 벽 앞에서 쓰러지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낸 용기와 주위의 수군거림에 상관없이 제 의지대로 밀고 나간 집념과 끈기,메달에 대한 욕심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달린 결과일 것이다.

우리 모두 마법을 꿈꾼다. 쓱쓱 문지르기만 하면 요정 지니가 나타나 원하는대로 다 이뤄주는 알라딘의 램프가 있었으면.램프는 없지만 마법은 생겨난다. 기다리던 일 비켜가는 수 많아도 무너지지 않고 덤벼들면 어느 새 놀라운 마법이 펼쳐진다.

남은 올림픽 기간 동안 또 어떤 마법과 기적이 일어날지 모른다. 분명한 건 로게 위원장의 말처럼 마법은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올림픽 선수만 그러하랴.우리 모두 그 어떤 고난에도 스스로를 방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내달릴 때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마법이 기다리고 있을 게 틀림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