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상상력이 빚어낸 판도라 생태계… 3D 영상혁명 신기원
[Cover Story] 뻔한 스토리… 하지만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 '아바타' 성공 일궜다
3D 블록버스터 '아바타'의 대성공 비결은 바로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은 나비족 캐릭터,판도라 행성과 거기 서식하는 생물 등을 탄생시켰다.

캐머런 감독이 영화 구상을 끝낸 것은 15년 전이지만 3D 입체영상 기술이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을 기다렸을 정도로 영화에 적용된 기술도 획기적이다.

3D 영상혁명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대단한 기술적 상상력도 주요 성공 요인이다.

⊙ 뻔한 스토리,그러나 놀라운 상상력

아바타는 우주에서 '늑대와 춤을','포카혼타스'와 '헤일로'가 만났을 때,또는 짬뽕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바타로 거듭난 제이크가 나비족 여인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영화 <늑대와 춤을>(1990)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인디언의 말을 익히고 인디언 여인 '주먹 쥐고 일어서'와 결혼하는 것과 닮았다.

문명화된 무기를 가진 인종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비록 무기 성능은 떨어지지만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다른 인종을 공격하고 그들의 삶을 파괴한다는 내용은 미국이 신대륙 개척사에서 아메리카 인디언의 삶을 파괴한 것과 똑같다.

나비족의 복장과 부족 연합 등에서도 인디언들이 연상된다.

나비(Na'vi)족이라는 이름도 나바호(Navaho) 인디언에 대한 은유로 느껴진다.

다른 점은 <늑대와 춤을>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아바타는 해피엔딩이다.

1607년 신대륙 탐험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1995)와도 비슷한 스토리다.

영국의 개척자들이 황금을 찾아 신세계인 미 대륙 버지니아에 닻을 내리는 것이나 원주민 추장의 딸 포카혼타스가 용맹스러운 전사 코코움과 혼인을 강요받자 400살 먹은 정령인 버드나무 할머니를 찾아가는 모습 등은 아바타에 비슷하게 재연된다.

다만 아바타에 우주와 미래형 무기 등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소설과 게임으로 출시된 2552년 배경의 <헤일로>를 <포카혼타스>와 섞어놓았다는 평을 듣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팬들은 '아바타'가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과 비슷한 요소가 많다고 한다.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영화의 전반적인 주제는 '원령공주'와 비슷하며,우주 함선의 격투신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그리고 공중에 떠 있는 섬들의 모습은 '천공의 섬 라퓨타'와 흡사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렇게 예전에 한두 번 보고 들어봤을 만한 뻔한 스토리를 대박 영화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상상력 덕분이다.

3미터 이상인 나비족의 기이한 외모,판도라 행성 동식물의 화려한 색깔,밤에 밟을 때마다 빛을 내는 식물 등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준다.

나비족이 말이나 비행생물을 탈 때 그들의 머리카락 끝에 달려 있는 촉수와 생물체의 촉수를 연결해 교감하는 장면이나 신으로 묘사되는 '에이아' 나무에 나비족이 촉수를 연결하고,또 판도라 행성의 나무들이 인간 뇌의 시냅스처럼 모두 연결돼 있다는 내용 등도 그런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 기술적 상상력,3D 영상 혁명 이끌어

아바타는 영상혁명의 신기원이다.

많은 사람이 아바타에 열광하는 것은 그것이 영화의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기술의 앞날을 알기 위해서는 아바타를 봐야 한다고 할 정도다.

아바타가 영상혁명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3D 입체와 디지털 액터,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한 단계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캐머런 감독의 촬영세트장 '볼륨'은 피터 잭슨 감독이 영화 <킹콩>(2005)에서 배우 앤디 서키스(킹콩 역)의 퍼포먼스를 캡처하기 위해 만들었던 세트보다 여섯 배나 크다.

이 비현실적으로 텅 빈 공간에서 배우들은 얼굴에 아주 작고 섬세한 카메라를 부착하고 연기했다.

카메라는 배우들의 얼굴 근육과 안구와 혀의 움직임을 곧바로 디지털 신호로 바꿔 컴퓨터에 전송한다.

얼굴과 신체적인 움직임은 살아 있는 생명체에 가까울 만큼 자연스럽다.

배우의 외형뿐만 아니라 연기의 감정적 뉘앙스까지도 모조리 디지털로 캡처된다.

그리고 '볼륨'의 주위를 둘러싼 거대한 컴퓨터들(세계에서 용량이 다섯 번째로 큰 컴퓨터가 바로 여기에 있다)이 전송받은 배우들의 연기를 곧바로 디지털 액터로 바꾸는 동시에,이미 만들어진 가상의 배경과 합성해서 보여준다.

제임스 캐머런이 아바타의 모션 캡처를 이모션 캡처(E-Motion Capture)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와 배우들은 촬영과 거의 동시에 첫 결과물을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캐머런은 새롭게 개발한 버추얼 카메라를 이용해 마치 실사영화를 찍는 것처럼 장면의 움직임을 조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건 정말이지 감정(Emotion)적인 모션 캡처의 진화다.

피터 잭슨과 스티븐 스필버그,조지 루카스가 아바타의 촬영장을 방문한 뒤 차기작에 캐머런이 개발한 시스템을 이용하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컴퓨터 그래픽(CG) 기술도 놀랍게 진화했다.

디지털 액터가 실제 배우를 전부 대체하지는 않아도 진짜 배우가 하기 힘든 일을 하거나 사망한 스타들을 스크린에 되살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야외촬영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아바타는 실사가 25%에 불과하지만,실재와 CG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CG의 사실성을 넘어 '실재의 재현'이라는 영화의 기본적 관념마저 흔들 정도다.

아바타는 갸우뚱했던 3D산업을 곧추세웠다는 평도 받고 있다.

영화는 물론 게임,TV 등에서도 3D산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대부분 극장이 3D 상영관을 늘릴 계획을 잡고 있고 캐머런 감독이 직접 개발에 관여한 게임 '아바타 더 게임'도 3D로 선보여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3D 방송은 올해 남아공월드컵,2012년 런던올림픽이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