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서부지법(형사11부 · 김현미 부장판사)에서는 한 재개발조합장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부는 마포구 아현뉴타운 3구역의 전 조합장인 유모씨에게 배임죄를 적용해 징역 4년,벌금 9100만원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유씨는 2006년 재개발용역업체 등과 짜고 서류를 조작해 40억원을 은행으로부터 용역업체 명의로 빌린 뒤 23억원을 개인 빚을 갚는 데 쓰는 등 조합원에게 재산상 피해를 끼친 점이 인정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조합장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등 선량한 조합원들에게 손해를 끼치고도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어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씨는 올 상반기에는 재개발용역업체 등에 총 74억원이란 거액의 성과급을 책정,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성난 조합원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졌고 유씨는 스스로 성과급을 철회해야 했다. 이를 계기로 검찰 수사가 시작됐고 결국 유씨와 용역업체 간 유착 관계가 적나라하게 밝혀지면서 유씨는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재개발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이 같은 조합장 비리는 비단 아현3구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행법상 민간에 맡겨져 있는 재개발 사업에서 각종 이권을 쥔 조합장의 권한은 거의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합원 지위를 사고팔 수 있기 때문에 조합원끼리는 결속력이 약한 데다 사업을 빠르게 추진하기 위해서라면 불법 행위도 용인해 줄 수 있다는 조합원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아울러 사업 초기단계에서 추진위원회(조합의 전 단계)가 주민 동의를 구하고 정비계획을 세우는 데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지만 자금력 부족으로 용역업체,시공사 등과 미리부터 결탁하는 게 현실이다.

서울시도 이런 문제를 인식해 올 7월 재개발 · 재건축에 공공관리자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용역업체,시공사 선정이 공개입찰을 통해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사업 초기 운영자금도 별도 기금에서 저리로 빌려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국토해양부가 재정여력이 없는 지방과의 형평성 문제를 들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바람에 관련 법제화는 늦어지고 있다. 아현뉴타운 조합장 비리사건을 취재하면서 재개발 비리를 근절하려면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호기 건설부동산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