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는 '국제 원전 플랜트 마피아'의 일원으로 알려진 프랑스와 겨뤄 이겼다는 점에서 해외건설 수주사의 한 획을 긋는 큰 성과다. 산술적으로만 보더라도 향후 10년 동안 매년 20억달러씩,그후 60년 동안 매년 3억3000만달러씩의 해외수주를 확보한 셈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해외 원전수주가 처음인 만큼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용어도 많이 등장했다. 우선 해외 원전수주와 원자로 수출과는 범위가 다르다. 원전수주란 원자로를 정해진 장소에 옮겨 설치하고 여타 구성품을 추가로 붙여서 전기가 생산되도록 하는 것까지 포함된 말이다. 즉 해외 원전수주에 원자로 수출이 포함되는 것이다.

이번 수주 총액 400억달러 중 200억달러는 10년 동안 발전소를 책임지고 지어주는 비용이며 나머지 절반은 60년 동안 발전소를 운영해주는 비용이다. 운영의 뜻은 핵연료를 공급해주면서 발전소가 잘 돌아가게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을 포함한다고 보면 된다. 한편 '책임지고'의 뜻은 발전소가 완성되기까지의 모든 일,즉 그 구성을 설계하고 자재를 조달해 시공을 끝낸 후에 발주자에게는 열쇠만 넘겨주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업은 '발전플랜트EPC 턴키사업'에 '발전플랜트 운영사업'이 더해진 것으로 보면 된다.

일부 언론에서는 일상적인 용어로서 '한국컨소시엄'이 수주했다고 하나 참여자 간의 지분배분에 관한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전문용어로서의 컨소시엄 수주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주계약자인 한전의 책임 하에 이 사업이 진행되리라 생각되며 참여하고 있는 여러 기업은 파트너로서 적극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향후 이 사업의 추진이 원활히 되기 위해서는 해외건설촉진법이나 엔지니어링진흥법,원자력사업법 등 관련법령을 내세운 임의적인 규제로부터 자유스러워야 한다. 사업진행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진행돼야 약속한 공기를 맞출 수 있기 때문에 관련 법제도나 규정들도 뒷받침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발주자인 UAE 측에서는 내년 1월 초부터 계약자인 우리 측을 독려할 것인데 사업팀의 조직구성,책임한계,비용배분 그리고 세부업무분담 등이 아직 논의되지 않고 있으니 실무자들은 애간장이 탈 것이다. 공기업과 민간기업,거기에다 외국기업도 끼어 있으니 협력이 쉽지는 않겠지만 최초의 해외원전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면 이후의 해외발전플랜트 수주는 꿈도 못 꿀 것이라는 각오로 임해야 될 것이다. 이번 수주에서 패한 프랑스나 다른 원전플랜트 선진국에서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하고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구체적인 각론에서는 더 큰 어려움도 예상된다. 예를 들면 싼 설계에 의한 비싼 시공방법을 택하느냐 혹은 비싼 설계에 의한 싼 시공방법을 택하느냐 하는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설계팀과 시공팀이 같은 회사 소속이면 어려울 게 없지만 이번 사업에서는 두 팀이 공기업과 민간기업에 각각 소속돼 있으므로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업 진행 중 예기치 않은 위험을 누가 떠 맡느냐 하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익을 많이 취하는 곳에서 많은 위험을 맡게 되지만 하청 사업특성상 공평한 결론을 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국내사업에서 '갑'의 역할에 익숙한 한전 측이 시공을 담당하는 민간기업에 '을'의 복종을 강요하는 형태는 피해야 한다. 각 참여자 역시 이 사업이 국제원전시장 진출의 첫 단추임을 명심하고 국가적인 대의를 위해 '어떻게 기여할 것이냐'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연말에 날아온 UAE 원전수주 낭보가 정부의 2010년도 '차세대 수출전략산업'에 포함된 플랜트산업 발전의 시금석이 되길 바란다.

/이재헌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한국플랜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