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연구비는 늘었는데 발표 논문은 줄었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2008년도 대학연구활동조사를 보면 지난해 전국 238개 4년제 대학에 지원된 연구비는 3조5346억원으로 전년보다 7.6% 증가했다. 그런데 대학 전임교수들의 논문 발표 수는 총 5만292편으로 3.4% 감소한 것이다.

언론과 당국 간 해석이 완전 딴판이다. 대부분 언론들은 대학연구활동의 부진을 탓하는 논조인 반면, 대학에 연구비를 지원하는 연구재단은 대학들이 연구의 양보다 질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만약 논문 수가 증가했다면 아마도 언론에선 연구비 증가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해 별다른 뉴스로 취급하지 않았을 게 뻔하다. 또 당국은 논문 수가 늘어난 것에 의미를 부여했으면 했지 논문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식의 분석을 내놨을 리 만무하다.

논문의 수냐, 질이냐는 정말 논쟁거리다. 제일 좋은 것은 우수한 논문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대학 교수들도 시장경제 행위자와 똑 같이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논문 수에 인센티브가 있다면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 당연하다. 지금이 그렇다. 논문 수는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었고, 국제적 비교기준으로 통용되는 이른바 SCI(과학기술인용색인) 저널에 실리는 논문들도 괄목할 정도로 증가했다.

하지만 논문 수 중시는 '논문 쪼개기' 유혹을 키운다. 국내 대학들 중엔 미국 명문대보다 SCI 논문 수가 더 많다고 자랑하는 곳도 적지 않다. SCI 논문 수를 늘리기 쉬운 분야가 있는가 하면,그렇지 않은 영역도 있다. 이런 특성을 무시하면 자칫 자원배분의 왜곡이 빚어질 수도 있다. 논문이 많이 나온다고 그 분야 산업 경쟁력이 반드시 높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재료 분야 논문이 많이 나와도 우리나라가 소재강국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실용화는 또 다른 얘기다. 한마디로 논문 수의 함정이다.

이 때문에 최근 국내에서도 논문의 질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인용(citation)지수'가 그것이다. 인용이 많이 되면 좋은 논문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문제는 있다. 이 경우엔 자기 논문을 인용하는 유혹이 커질 것이다. 저널의 경우에도 '영향력 계수(impact factor)'라는 게 있다. 널리 인용되는 논문이 많은 저널을 유력지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유력지에 논문이 실렸다고 꼭 그 논문이 많이 인용된다는 보장은 없다. 유력지의 영향력 계수에 무임승차하는 논문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논문 수도 따지고, 질도 따지는 기준은 없는 것인가. 'h-index'가 있다. 자기가 쓴 논문 중 인용된 횟수가 h 이상인 논문 수가 h이면 그 교수의 h지수는 h다. 당연히 h가 높으면 좋은 학자다. 그러나 이것도 완전한 건 아니다. 같은 h지수를 가진 학자라 해도 특정 논문의 인용횟수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별짓 다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게 다 논문을 두고 벌어지는 일들이다.

대학은 교육, 연구, 산업적 기여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학문 분야에 따라서는 논문이 전부인 것도 아니다. 문제는 정부의 획일적 기준, 또 이에 유행처럼 따라가는 대학들이다. 교육 잘하는 대학, 연구 잘하는 대학, 산업적 기여가 높은 대학 등 대학의 다양성을 다시 생각해 본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