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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8월,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에스파냐의 팔로스항에서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대서양 항해에 나선다.

당시 영국 ·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항해 자금 지원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하지만 에스파냐 카스티야 왕조의 이사벨라 여왕은 '투자유치'에 실패한 콜럼버스의 제안을 국부 창출의 새로운 기회로 생각하고 흔쾌히 자금지원을 수락했다. 신대륙 발견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과감하게 벤처 비즈니스를 단행한 것이다. 이후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인들의 활동무대가 됐고 에스파냐는 식민지 경영과 대서양 무역을 통해 글로벌 경제의 패권국으로 등장하게 된다.


콜럼버스와 그를 지원한 이사벨라 여왕 사이의 약속을 우리는 '역사상 최초의 계약'으로 꼽는다. 이사벨라 여왕은 테이블 위에 놓인 달걀을 가리키며 콜럼버스에게 물었다. "저 달걀을 바로 세울 수 있겠습니까?" 콜럼버스는 달걀을 세운 채 테이블위에 살짝 내리쳤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달걀의 끝부분이 깨지며 테이블위에 바로 섰다. 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바로 세계 역사상 최초의 '벤처투자심사'였던 것이다.

세계 최초의 벤처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프로젝트를 꼽는다면,콜럼버스는 최초의 벤처기업인이고,이사벨라 여왕은 첫 벤처 캐피털이 된다. 'Venture'의 사전적 의미는 '위험을 무릅쓰고 하다'로 뜻이 풀이돼 있다. 모험을 감행한다는 뜻도 들어 있다.

1990년대 우리 벤처기업들은 혁신과 도전,자율과 수평주의,회사와의 일체감 등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벤처정신'을 보여줬다. 이런 벤처정신이 우리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되고 수출 강국의 밑바탕이 됐음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요즘엔 이런 벤처정신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업체가 많지 않다.

인공위성이 없던 시절,그러니까 GPS(위성항법장치)도,여행 가이드북도 없던 시절 콜럼버스가 동방에 닿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바다로 나간 것처럼 벤처정신으로 무장하고 글로벌 마케팅에 나선 강소기업들이 주목받게 되는 이유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많은 중소기업들이 벤처정신으로 무장하고 신대륙 발견에 버금가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내놓을 전망이다. 어떤 기업인은 달걀을 복제하는 기술로,또 다른 기업인은 자기(磁氣)부상 달걀로 벤처심사나 투자를 요청할지도 모른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즉 블루오션에 도전하는 젊은 기업,목표를 정해 한번 죽어라고 매달려보는 기업들이라면 분명히 인정받아야 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경제난으로 2009년은 1년 내내 국내 산업계가 요동쳤던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그만큼 굵직한 현안들과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불황도,우울한 경기지표도 '새해를 맞는 기대'까지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신재섭 기자 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