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어린 시절은 초등학교 한반에 70~80명이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 모여 북새통을 이루면서 3부제 수업도 예사였고,치열한 입시경쟁을 헤쳐나가는 것이 생존법이었다.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이끈 중심 계층으로 성장했지만 그 격동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변변한 제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살 만했던 것도 잠시,1990년대 디지털시대가 전개되는 대변혁의 조류에 뒤처진 상실감,외환위기로 인한 퇴출의 공포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과거 농업사회의 가치관과 현대 도시문화의 틈새에서 어정쩡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자신에게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가 절대적이었지만 이제 스스로는 자식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다.

그들은 다름아닌 우리 사회의 베이비붐 세대다. 한국전쟁 이후 1955년부터 산아제한정책이 도입되기 직전인 1963년 사이 9년 동안 태어난,전체 인구의 14.6%를 차지하는 무려 712만여명의 거대 집단이다. 지금까지 생산과 소비의 주도 세력이었고 부동산 예금 주식 등 보유자산에서 다른 세대를 압도하지만,대다수는 자녀교육과 내집마련에 올인하느라 아무런 노후준비가 안 돼 있다.

이 사람들이 지금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내년에 기업의 평균정년인 55세에 도달하는 1955년생부터 상당수가 그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야 하는 까닭이다. 베이비부머의 절반 정도가 2010년부터 차례로 은퇴,매년 30만~40만명이 경제활동을 중단하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퇴장이 갖는 의미는 결코 간단치 않다. 앞으로 우리 경제 · 사회 전반에 과거 겪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양상의 충격파를 몰고 올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정부로서는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빈곤층으로 밀려나고,세금 낼 사람은 주는 반면 연금지출 등 사회보장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따른 재정악화의 악순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퇴장은 해마다 30만~40만명에 이르는 숙련된 고급 노동력이 한꺼번에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이들이 30년 가까이 다듬어온 노하우는 그들의 떠난 자리를 채우는 젊은 인력으로 대체되기 어렵다. 노동시장의 공백,노동력의 질적 저하를 피할 수 없다.

기업은 물론 국가 전체의 생산성 하락,경쟁력의 퇴보,결과적으로 경제성장의 둔화에 직면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들이 모두 은퇴하는 2018년 이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2%대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제로 성장,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사회구조적 요인이 베이비붐 1세대의 은퇴라는 것은 정설(定說)이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한 호황에 군국주의 정권의 출산장려로 1929~1938년 사이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이 당시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2175만명에 달했다. 이들의 풍부한 노동력이 1950~1960년대 고도성장의 원천이었지만,1990년대 초 대거 경제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소비와 투자가 줄고 내수시장 위축,부동산시장 붕괴 등 깊은 불황에 빠져들었다. 일본 정부의 전방위적인 경기부양에도 불구하고 이후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또한 '단카이(團塊)세대'로 불리는 2차대전 후 베이비부머(1946~1949년생)들의 퇴진이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베이비부머들의 퇴장은,어쩌면 미래의 한국을 위협하는 저출산과 고령화,청년실업보다 더욱 심각하고 다급한 현안이다. 우리 경제를 또다시 위기로 몰아넣는 진원(震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정부는 정년연장 등 그들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얘기다. 이미 위기의 방아쇠는 당겨졌는데….

논설실장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