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또 다른 위기, 베이비붐 세대 퇴장
그들은 다름아닌 우리 사회의 베이비붐 세대다. 한국전쟁 이후 1955년부터 산아제한정책이 도입되기 직전인 1963년 사이 9년 동안 태어난,전체 인구의 14.6%를 차지하는 무려 712만여명의 거대 집단이다. 지금까지 생산과 소비의 주도 세력이었고 부동산 예금 주식 등 보유자산에서 다른 세대를 압도하지만,대다수는 자녀교육과 내집마련에 올인하느라 아무런 노후준비가 안 돼 있다.
이 사람들이 지금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내년에 기업의 평균정년인 55세에 도달하는 1955년생부터 상당수가 그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야 하는 까닭이다. 베이비부머의 절반 정도가 2010년부터 차례로 은퇴,매년 30만~40만명이 경제활동을 중단하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퇴장이 갖는 의미는 결코 간단치 않다. 앞으로 우리 경제 · 사회 전반에 과거 겪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양상의 충격파를 몰고 올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정부로서는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빈곤층으로 밀려나고,세금 낼 사람은 주는 반면 연금지출 등 사회보장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따른 재정악화의 악순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퇴장은 해마다 30만~40만명에 이르는 숙련된 고급 노동력이 한꺼번에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이들이 30년 가까이 다듬어온 노하우는 그들의 떠난 자리를 채우는 젊은 인력으로 대체되기 어렵다. 노동시장의 공백,노동력의 질적 저하를 피할 수 없다.
기업은 물론 국가 전체의 생산성 하락,경쟁력의 퇴보,결과적으로 경제성장의 둔화에 직면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들이 모두 은퇴하는 2018년 이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2%대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제로 성장,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사회구조적 요인이 베이비붐 1세대의 은퇴라는 것은 정설(定說)이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한 호황에 군국주의 정권의 출산장려로 1929~1938년 사이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이 당시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2175만명에 달했다. 이들의 풍부한 노동력이 1950~1960년대 고도성장의 원천이었지만,1990년대 초 대거 경제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소비와 투자가 줄고 내수시장 위축,부동산시장 붕괴 등 깊은 불황에 빠져들었다. 일본 정부의 전방위적인 경기부양에도 불구하고 이후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또한 '단카이(團塊)세대'로 불리는 2차대전 후 베이비부머(1946~1949년생)들의 퇴진이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베이비부머들의 퇴장은,어쩌면 미래의 한국을 위협하는 저출산과 고령화,청년실업보다 더욱 심각하고 다급한 현안이다. 우리 경제를 또다시 위기로 몰아넣는 진원(震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정부는 정년연장 등 그들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얘기다. 이미 위기의 방아쇠는 당겨졌는데….
논설실장 kunn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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