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 기아자동차가 내년도 사업계획 확정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올해 국내외 판매를 작년보다 10% 이상 늘린 여세를 몰아 내년에도 공격 경영에 나설 계획이지만,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역점을 둬 온 신흥시장의 성장세가 꺾이고 있는 데다 환율 움직임도 우호적이지 않다는 게 최대 변수다. 구조조정을 끝낸 도요타 GM 등 경쟁사들이 소형차 비중을 늘리는 등 견제에 나선 것도 전략 마련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 신차 구입 혜택 종료

내년엔 각국 정부의 전폭적인 신차 구입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국내에선 노후차 세제지원 혜택이 연내 종료된다. 중국에선 내년 1월부터 '아반떼 위에둥'과 같은 1600cc 이하 차량의 구매세가 종전 5%에서 7.5%로 다시 올라간다.

미국과 독일은 지난 8~9월 폐차 지원책을 마감했고,영국 역시 내년 2월 관련 정책을 폐지할 예정이다. 신차 인센티브가 없어지면 현대 · 기아차의 주력인 소형차 판매가 위축될 것이란 관측이다.

◆ 반격 나선 경쟁사들

도요타 GM 등은 최근 구조조정을 마쳤고,폭스바겐 피아트 등은 합종연횡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이들 회사는 연비가 좋은 소형차 및 친환경차 라인업을 대폭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도요타 등 경쟁사들은 현대 · 기아차보다 훨씬 많은 연구개발(R&D)비를 투입하고 있다.

유럽위원회(EC) 보고서에 따르면 도요타는 작년 R&D 분야에만 76억1000만유로를 투자했다. 현대 · 기아차(12억5000만유로)보다 6배 많은 규모다. 하이브리드카 등 미래차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R&D 투자의 열세는 향후 큰 위협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 국제경제 성장 둔화

국제 금융위기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은 최대 불안 요인이다. 두바이 그리스 등 일부 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유럽 실물경기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유럽은 현대 · 기아차의 주력 시장 중 하나다.

내년엔 신흥시장 성장세도 꺾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산업연구소는 내년 글로벌 신차 수요가 6492만대로,2005년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내수 규모는 141만대로 올해보다 1.4%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 환율 추가하락 가능성

원 · 달러 환율이 내년에 추가 하락하면서 생산물량의 80% 이상을 수출하는 현대 · 기아차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현대 · 기아차는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마다 매출이 2000억원씩 줄어드는 구조다.

자동차산업연구소가 예측한 내년 원 · 달러 환율은 1100원대다. 올해 평균(약 1310원)보다 20% 정도 낮은 셈이다. 반면 국제 유가는 배럴당 80달러 이상으로 뛸 것으로 봤다. 기름값 상승은 신차 판매 확대에 부정적인 요인이다.

◆ 경직된 노사 문화

현대 · 기아차의 생산 유연성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환경 변화에 재빨리 대응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현대차 노조는 1987년부터 작년까지 22년 동안 1994년 한 해를 빼고는 매년 파업을 벌여왔다. 해외 공장을 신설하거나 생산차종을 결정할 때 노조가 제동을 거는 일도 다반사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내년엔 글로벌 대형 업체들이 소형차와 신흥시장 확대에 나서면서 현대 · 기아차가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며 "추가적인 원가절감과 소형차의 모델 다양화가 과제"라고 지적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