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왕 앤드루 카네기가 미국 피츠버그시에 도서관과 공회당을 기증하겠다고 두 번이나 제의했으나 시의회는 모두 거절했다. 얼마 뒤 시의회가 생각을 바꿔 기증을 요청하자 카네기는 두말 않고 네 배나 많은 액수를 쾌척했다. 주변에서 시에 서운한 감정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감사 인사를 받기위해서였다면 그런 제안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면서 "시민들 덕에 많은 돈을 벌었으니 그들을 위해 무엇을 남겨놓고 싶었다"고 말했다.

12대 300여년 동안 부(富)를 이어온 경주 최부자집에는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고,사방 100리 안에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이 있었다.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말고,며느리로 들어오면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으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한 해 생산하는 쌀 3000여석 가운데 1000석은 집에서 쓰고 1000석은 나그네에게 베풀며 나머지 1000석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긴 세월 존경받는 부자로 이름을 날린 데는 이런 아름다운 나눔이 뒷받침됐던 것이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실천하는 작은 나눔은 더 소중하다. 얼마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김만덕 나눔쌀 만섬 쌓기'행사장을 찾아 1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넨 80대 할머니는 500만원짜리 전세방에 산다고 한다. 생계지원비 50만원 중 4만원을 동남아 어린이 후원금으로 내고 있다니 그야말로 나눔의 본보기다. 할머니는 "정부 지원만으로도 사는 데 충분하다"면서 "더 힘든 사람을 도울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단다.

금융위기 여파로 먹고살기가 버거운 탓인지 사회전반의 나눔 손길이 줄어드는 모양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난 1일 시작한 '희망 2010 나눔 캠페인'모금액이 18일까지 개인 114억원,기업 607억원 등 721억원으로 지난해 보다 46억원 감소했다. 일정 액수가 모금될 때마다 온도가 올라가는 '사랑의 온도'도 지난해 36.8도에서 올해는 32.6도로 뚝 떨어졌다.

애써 모은 재산을 내놓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하지만 일단 나눔을 실천하다 보면 마법에 걸린 것처럼 행복해지는 '법칙'이 있다고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자신이 거주하던 쿠바의 성당에 노벨상 상금을 기부한 후 "당신이 무엇인가 소유했음을 알게 되는 것은 그것을 누군가에게 나눠 주었을 때"라고 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이든 구세군 자선냄비든 적은 액수라도 일단 나눔에 동참해야 그 '법칙'을 알게 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