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앞두고 국내 건설업계가 '해외수주 사상 최대치 경신'이라는 큰 경사를 맞았다. 지난 14일 기준으로 올해 수주액만 478억달러에 이른다. 작년 말 시작된 세계경기 침체를 딛고 이뤄낸 성과여서 잔칫상이라도 차릴 법하다.

하지만 요즘 건설사들의 분위기는 뒤숭숭하기만 하다. 새해가 코앞인데 내년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는 업체가 수두룩하다. 건설사 사장이나 고위 임원의 입에서 "뭘로 먹고 살지 아득하다"는 고민과 "벼랑 끝에 선 심정"이라는 걱정이 심심찮게 나온다.

너나 할 것 없이 요즘 건설업계의 화두는 '불투명한 미래'다. 건설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주택(건축),토목,해외사업의 중장기 예보가 모두 '잔뜩 흐림'이기 때문이다.

해외건설만 해도 그렇다. 최근 호황의 일등공신인 오일머니(중동)와 플랜트 시장이 "5년 이상 못 간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1970~80년대 효자노릇을 했던 토목 · 건축 부문은 이미 중국 · 인도 등 후발국들에 시장을 내줬다. 내수시장의 큰 축인 토목 부문 역시 도로,철도 등 사회기반시설(SOC)이 대부분 갖춰져 더 나올 만한 일감이 많지 않다.

주택 쪽은 더 심각하다. 올해 첫선을 보인 보금자리주택은 실수요자들의 눈높이를 서울도심 반경 20㎞ 이내로 묶어 놓았다. 이른바 '보금자리 쇼크'다. 더욱이 우리 인구의 34%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34~53세) 은퇴와 노령인구 급증은 곧바로 주택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2019년이면 절대 인구 자체가 준다는 전망도 나와 있다. 벌써부터 "주택사업은 이미 끝났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주택 비중이 높은 우리 건설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15.8% 수준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10%다. 미국과 영국은 8~9%로 더 낮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건설사들의 '파이'가 줄어든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주택의 경우 1~2인 가구 및 노인용 미니주택,녹색건설 등 다품종 소량생산이 대세라는 충고가 나온 지 오래다. 시공능력과 IT(정보기술)로 무장한 우리의 주택 · 도시건설 노하우를 도시화율이 20~30%에 불과한 동남아,아프리카 등 이머징마켓에 접목시킬 수 있다는 낙관론도 있다.

물론 그동안 해외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리스크 관리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해외시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절박감이 배어 있는 고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짓기만 하면 팔리던 '달콤한 과거'를 지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을 건설사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정부만 바라보는 '천수답 경영'도 사라져야 할 구태다. 정부 역시 '더 빨리,더 많이'를 외쳤던 정책기조 수정을 준비해야 한다. 건설사들이 단순시공에서 벗어나 건설과 금융이 결합된 선진형 디벨로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일도 시급하다.

8만5000개에 이르는 건설사와 정부,전문가 그룹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야 한다. 산업화시대 부터 줄곧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건설산업의 170만 취업자 및 가족들의 일자리와 생계가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새해가 '건설산업 블루오션'을 찾아내는 원년이 되길 바란다.

강황식 건설부동산부 차장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