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명예를 중시하며 살아오셔서 교장까지 되신 분들이 임금 체불했다고 전과자가 되는 게 말이 됩니까?"

9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서울 사립중고교 교장단 정기총회에서 D노무법인의 한 노무사가 한 말이다. 이날 총회의 주요 안건은 고교선택제와,현재 대부분 위탁으로 운영 중인 학교급식의 직영시스템 도입 등 두 가지였다.

하지만 교장단은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고교선택제 변경에 대해선 관심이 거의 없었다. 한 교장은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고교선택제가 아니라 직영급식 문제"라고 했다. 실제 조형래 배명고 교장이 고교선택제를 바꾼 서울시교육청의 부당함을 지적할 때 시큰둥하던 교장들은 "정부가 법 제정을 통해 내년 1월 시행하려는 학교급식 직영을 행정소송을 하더라도 위탁으로 바꾸겠다"는 윤남훈 정의여고 교장의 발언에는 큰 박수로 호응했다.

교장들은 왜 고교선택제보다 직영급식 문제에 더 매달리는 것일까. 이 의문은 이어지는 노무사의 발언에서 쉽게 풀렸다. 이 노무사는 "현재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직영급식을 하는 순간 교장이 고용인이 된다"며 "임금체불 등에 대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급식 관련 종사자들이 대부분 여성일 텐데 뇌출혈이나 심근경색 같은 병이 발생하면 산재처리야 되겠지만 학교에서도 보상해 줘야 한다"며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교장들도 "급식 직원들이 파업하면 대체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느냐""휴업 시 휴업수당을 줘야 되느냐" 등 자신들과 관련된 질문만 쏟아냈다. 급식 시스템 변경에 따른 학생 건강권을 염려하거나 대책을 마련하자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총회에 참석한 한 학교 관계자는 "교장들이 학생들의 건강권보다 자기 보신에만 관심있는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얼마 전 고교선택제 변경안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후 한 학부모는 "고교선택제 변경 자체보다 힘 없고 돈 없는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이 정책 결정에서 무시당한 것 같아 더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 학부모가 이날 교장단 정기총회를 지켜봤다면 자신의 의견이 묵살된 것보다 학생은 안중에도 없는 교장들의 태도에 더 화가 났을 것 같다.

이재철 사회부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