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 금융안정 기능 및 금융회사 단독조사권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한 한은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와 금융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다. 한나라당 소속 김영선 국회 정무위원장은 7일 민주당 소속 유선호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게 공문을 보내 한국은행에 금융기관 조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한국은행법 개정안에 대한 심사를 보류해 줄 것을 요청했다. 김 위원장은 "정무위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은법 개정안이 처리되는 것은 잘못"이라며 "정무위의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심사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신동규 은행연합회장,황건호 금융투자협회장,이우철 생보협회장,이상용 손보협회장,주용식 저축은행중앙회장,장형덕 여신금융협회장 등 6개 금융협회장은 7일 국회 재정위원회에서 한은법 개정안이 통과된 직후 회동을 갖고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금융협회장들은 이번 개정안은 한은이 실질적인 감독권을 갖게 되며 거시금융안정보고서와 관련해 수시로 공동검사를 요구할 수 있어 은행에 업무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지급결제와 관련해 2금융권에 대해서도 한은이 금융감독원에 공동검사를 요구할 수 있게 돼 업무부담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은행의 지급준비금 적립대상에 금융채를 포함시키게 됨에 따라 시장금리가 상승하고 실물경제가 위축되는 등 이번 한은법 개정안은 문제투성이라고 지적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은법 개정안에 대해 "방향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는 "거시감독의 초점은 개별 금융회사의 문제가 어떻게 하면 시스템 위기로 안 가게 하는 것이 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관련 기관들이 공조하고 정보공유를 잘하도록 하는 것이지 한은법 개정안처럼 금융회사의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결론이 난 곳은 없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중앙은행 기능에 대한 선진국의 논의동향을 봐가며 내년께 전체 금융감독체계의 개편을 심도 있게 논의하자고 제안했는데 재정위가 일방적으로 처리해 유감"이라고 평가했다.

한은은 입단속에 나서는 분위기다. 금융안정 기능 및 금융회사 단독조사권 등은 잘된 일이지만 긴급여신을 투입할 때 재정부 장관의 의견을 듣도록 한 것은 불만이라는 입장이다.

금융감독과 관련된 국회의 주무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마저 반대에 나서면서 한은법 개정안은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국회의 전반적인 기류다.

신학용 정무위 간사(민주당 의원)는 "관례상 법사위에서 상임위 간 이해상충을 이유로 한은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낮은 만큼 법사위의 처리 여부를 지켜보겠다"면서도 "정무위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한은법 개정안에 대해 여야 의원 30명 명의로 수정안을 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동/김형호/이심기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