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 탤런트 최수종씨(47)는 국가대표급 '기부천사'다. '잉꼬커플'로 유명한 아내 하희라씨와 함께 독거노인과 소아암 환자 등을 돕는 데 헌신해 왔다. 최근에는 복음성가 앨범을 내고 '화상(火傷) 환자' 돕기에도 나섰다. 이에 대해 최씨는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것"이라며 "베풂은 결국 내게 몇 배의 행복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최씨는 한국경제신문과 인간개발연구원이 지난 26일 롯데호텔에서 연 목요 조찬 모임에 나와 사랑과 봉사의 삶에 대해 들려줬다. 강연 뒤 최씨를 만나 '나눔과 배려'의 철학에 대해 더 물었다.


▼요즘 화상 환자를 돕고 있다면서요.

"하희라씨(그는 아내를 늘 이렇게 부른다)와 함께 복음성가 앨범을 내고 수익금 전액을 화상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기탁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최근 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갖고 수록곡 '사랑이란' 등을 노래했습니다. 하희라씨가 양초공예를 배우기 위해 공업용 파라핀젤을 만지다 2도 화상을 입은 게 계기였습니다. 견디기 힘든 아픔과 고통을 느낀 뒤 '오빠, 화상환자들을 돕자'고 하더군요. "


▼독거노인과 학대받는 어린이 등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는지요.

"독거노인에겐 몸으로 봉사합니다. 단칸방에 있는 짐들을 빼낸 뒤 벽지를 바르고 장판을 새것으로 갈아 드립니다. 틈새로 바람이 새는 문도 고쳐주고요. 부엌은 생활하기 편리하도록 전문가들이 개조하도록 합니다. 학대받는 어린이들에게는 격리조치를 취해줍니다. 안전한 보호시설을 찾아내 옮겨주는 거지요. 소아암 환자들에게는 수술비를 기부합니다. 하희라씨는 요리책를 판 수익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


▼북한과 방글라데시 등으로도 봉사활동을 확대했다면서요.

"2005년 평양의 고아원을 방문해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의류와 학용품 등을 전달하고 항생제와 영양제 생산 공장을 지어줬습니다. 캄보디아 네팔 방글라데시의 의료봉사 활동에도 NGO(비정부기구)들과 함께 참여했어요. 그들에게 먹을 것만 주는 게 아니라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데 힘씁니다. 가령 벼나 곡식을 농사짓거나 소와 양 등 가축을 기르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주민들과 함께 난로 설치 공사도 했습니다. 그곳 아이들을 데리고 근교에 가서 놀아주기도 하고요. "


▼그들과 함께 지낼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지구는 하나란 사실을 새삼 절감합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따뜻한 무언가를 주는 것을 느낍니다. 아이들을 돌보고 대화할 때 내 아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이들에게 꿈이 무언지 그려 보라고 하면 의사 · 경찰 · 소방관 등을 그립니다. 미래에는 자신들도 누군가를 돕겠다는 거지요. NGO들로부터 도움받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헤어질 때 아이들은 대개 우는데,그때 제 가슴도 찢어지듯 아픕니다. "


▼바쁜 연기생활에서 어떻게 시간을 쪼개고 수입 중 얼마나 기부하시는지요?

"연기자이다 보니 촬영이 끝날 무렵 짬을 내 봉사활동에 나섭니다. 내년에 무얼하겠다고 계획을 세우지는 못합니다. 수입의 몇 %를 기부한다고 계산하지도 않고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때그때 지원 여부를 결정합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 '독도는 한국땅'이란 캠페인을 벌이는 서경덕씨로부터 뉴욕 자연사박물관에 한국어 안내문이 없으니 한국어 브로셔 5만부를 제작하자는 제안을 받고 하희라씨와 상의해 기부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런 사안을 두고 서로에게 한번도 안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올해로 결혼 16년째인데,기념일(11월20일)마다 좋은 일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


▼나눔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1987년 미국 유학 중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했습니다. 공직에서 은퇴한 아버지가 파라과이로 이민가서 사업하다 사기를 당해 집안이 파산했습니다. 귀국한 저는 끼니를 때우기 어려웠습니다. 넉 달 동안 선배들에게 돌아가면서 전화를 걸어 밥 사달라고 졸랐지요. 그때 공중전화 걸려면 20원이 필요했는데 이 돈으로 하루를 연명해 나간 셈이지요.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자식을 낳아 고생시킨다고 부모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잠원동의 한 벤치에서 잠을 청했는데,누군가 '친구 이거 덮고 자'라며 신문지를 건네는 것이었어요. 일어나보니 저보다 남루한 옷을 입은 분이더군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어려운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 저를 도와주는 거예요. 그 순간 모든 것이 잊혀지고 기도가 절로 나오더군요. 저에게 돈 벌 기회가 생기면 저런 마음을 갖도록,저런 사랑을 베풀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1만원을 벌면 5000원이라도 남을 위해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후 저는 어머니께 단칸방이라도 마련해 드리기 위해 돈 버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용산구청 건립 공사장에서 벽돌도 져 날랐어요. "


▼자원봉사자들은 흔히 나눌수록 더 많이 채워진다고 합니다. 정말 그런지요.

"베풀면 몇 배로 돌아옵니다. 더 많은 작품과 광고에 출연했다는 뜻이 아니에요. 나눔활동을 하면 감사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이 생깁니다. 나보다 못한 이웃을 보면서 내 몸이 움직이는 게 감사하고,사지가 멀쩡한 게 감사합니다. 별 탈없는 집안 일과 하루하루가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돈이 많으면 약간 편안할 수 있지만 다른 길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기부와 나눔은 집안 전체에 행복을 가져옵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두 아이 민서(11)와 윤서(10)는 용돈을 모아 다른 친구를 위해 쓸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번 쇼케이스에서도 스스로 바이올린과 플루트를 불겠다고 하더군요. 부모의 행동을 보고 그런 마음을 키워가고 있었던 거지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


▼부인과 아이들에게도 존댓말을 하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나눔과 배려는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정신입니다. 존댓말은 상대를 존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아내는 저를 '오빠'라고 부르지만 저는 '하희라씨'라고 부르죠.두 아이는 내가 낳은 자식이라기보다는 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뜻에서 '씨'자를 붙입니다. 윤서 생일 때 친구들을 모은 자리에서 '최윤서씨 생일 축하해요'라고 말하곤 돌아나올 때였어요. 한 아이가 '너희 아빠 왜 저렇게 말해'라고 묻자 '우리아빠 원래 나한테 존대해'라고 답하더군요. 그때 전 깜짝 놀랐습니다. '웃긴다'란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진짜 부럽다'고 하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해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아빠는 믿습니다'란 말을 하루에도 열댓번은 합니다. "


▼가족에게 식사를 직접 만들어주는 것도 나눔과 배려의 실천인가요?

"아내가 세 차례나 유산한 뒤 여성들의 아이 낳는 고통을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남편으로 집안 일을 거들기로 했습니다. 주일 교회에 다녀온 뒤 10번 중 6번은 제가 음식을 만듭니다. 냉장고 속 여러 반찬들을 혼합해 비빔밥과 볶음밥을 만듭니다. 아내는 배에 왕(王)자가 새겨지도록 열심히 운동하는데 그것이 저를 위한 배려라고 하더군요. "


▼흔히 나눔과 봉사는 가진 사람들의 일로 생각합니다. 돈 없는 사람들의 기부활동도 가능합니까.

"기부는 돈으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뭔가 줘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나눔과 배려는 제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나눠주는 것도 기부입니다. 이번 앨범에서 저는 목소리를 기부했습니다. 정신을 전파하는 것도 나눔입니다. 기자님이 이 글로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면 그것도 기부입니다.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알짜를 가르치는 것도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데 길잡이가 될 만한 경구가 있는지요.

"뒤집어 생각하면 세상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수고했다'를 뒤집어 보면 '고수가 됐다'예요. '자살'은 '살자', 노(no)는 진행형 온(on)입니다. 이런 새로운 발상이 세상을 바꿉니다. 천국에서 쓰는 일곱가지 말이란 게 떠오릅니다. '미안해요''괜찮아요''좋아요''잘했어요''훌륭하다''고마워''사랑해요' 등입니다. 이런 말을 일상에서 실천하면 이 세상이 천국이 될 겁니다. "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